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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스

아르메니아, 추억의 장소 마땅한 숙소가 없는 예레반에서, 맘편하게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허름한 건물에 스프링이 꺼져버린 침대였지만, 개인으로 여행하던 시절,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의 4개월 중 가장 편한 숙소였고, 가장 오래 머물던 숙소였다 리다 할머니는 날 알아보지 못하셨다. 2년만이었고, 그간 수없이 많은 일본사람 한국사람을 봐왔을 터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따뜻한 눈빛만은 그대로셨다. 쌀쌀한 아침,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던 아르메니아 커피가 그립다. 2년 전, 아장아장 걸으며, 한국말로 누나! 안녕, 하는 말을 배워 곧잘하던 아람과 그의 형 까를로스. 귀여웠던 아이들도 많이 자라 있었다. 물론 날 알아볼 리는 없었지만. 팀원들을 이끌고 갔던 여행에선 호텔에 묵게 되어 민박집에 갈 필요가 없었지만, 추억이 날.. 더보기
게가르드 수도원과 가르니 유적 게가르드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어로 창이란 뜻이란다. 지금은 에치미야진에 있는 롱기누스의 창이 원래는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 게가르드 수도원은 거대한 암벽 옆에 세워진 수도원이다. 주위이 절벽에 뚫려 있는 많은 동굴들은, 4-10세기에 걸친 최초의 수도원의 흔적이란다. 아르메니아 총주교와 한국 스님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기념으로 한컷. 가르니 유적은 아르메니아 유일의 헬레니즘 건축물이다. 이지역이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을 무렵, 태양신 미트라의 신전으로 지어진 것을 왕조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궁전으로 사용했단다 가르니 유적 뒤쪽의 주름절벽 또한 유명하다. 마치 커튼의 주름처럼 쪼글쪼글한.. 2010. 08. 더보기
아르메니아, 세반호와 예레반 그루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국경을 넘은 후에는, 알라베르디의 하그팟 수도원에 들렀다가, 세반호수로 갔다. 그 다음엔 아르메니아 최고의 피서지 딜리잔에 들렀다가 수도인 예레반으로 갔다. 아르메니아 최대의 호수, 세반이다. 개인으로 여행했을 땐, 예레반에 머물면서 당일치기로 다녀왔는데 이번엔 호숫가의 숙소에 묵으며 세반호의 노을도 볼 수 있었다. 하츄카르, 십자가석이다. 반드시 서쪽을 향해 세워지며, 주로 묘석으로 이요되었지만, 중요한 사건(전쟁에서의 승리, 교회나 다리의 건설 등)을 기념하는 경우에도 사용되었으며, 건립자의 이름과 그 이유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천재지변을 피하거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이싸는 민간신앙도 넓게 퍼져 기독교 이전의 종교가 영향을 끼쳤다고도 한다. 아르메니아 국내에만 400.. 더보기
그루지아 제2의 도시 쿠타이시 고리에서 쿠타이시로 넘어가는 길, 휴게소에선 이렇게 도자기들을 팔고 있었다. 쿠타이시 최고의 볼거리, 바그라티 대성당은 안타깝게도 대대적인 보수공사중이었다. 바그라티 대성당에서 바라본 쿠타이시 시내. 쿠타이시 시내를 흐르는 리오니강, 그리고 다리위의 닭장수들. 이것이 바로 쿠타이시 바자르 건물 벽의 부조다. 쿠타이시 최고의 볼거리는 바로 이게 아닐까. 쿠타이시 시내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들인 것 같긴 한데.... 2010. 08. 더보기
그루지아, 고리의 스탈린 생가 그루지아 중부의 작은 도시 고리는 스탈린의 고향이다. 우리에겐 악명높은 공산주의자이지만, 그 곳 사람들에겐 고향출신 출세한 사람인 모양이다. 고리에 도착한 후 처음 먹었던 이 치즈 피자, 하차프리. 여기가 바로 스탈린 생가다. 태어나고 4년간 살았다는. 생가 바로 뒤에 스탈린 박물관이 서 있다. 사진과 스탈린의 데드마스크, 외부로부터의 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 스탈린은 비행기공포증 때문에 출세하고 난 후에도 꼭 열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이 열차는 스탈린 전용 열차였단다. 박물관 내부 알아먹든 못알아먹든 끝까지 러시아어로 설명해주시던 해설사. 위의 탁자와 이 침대는 스탈린 생가 안에 있었다. 스탈린 전용열차의 내부 고리 시내 관공서쯔 되는 건물일거다.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이 여행을 했어야 해서 도무지 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