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국경 넘기
수단 국경은 짜증났다. 수단에서는 입국 후 사흘 안에 외국인 거주등록을 하게 되어 있는데, 무조건 지금 당장 하란다. 131 수단파운드. 그것 때문에 좋지 않을 게 뻔한 환율로 국경에서 환전을 해야 했고, 국경 환율로 65.5달러를 거주 등록비로 내야했다. 카르툼에서 하면 85파운드 정도인데 여기는 왜 더 비싸냐고, 카르툼 가서 할거라고 했더니, 지금 돈 내든가, 아니면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든가 하란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내고,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영수증은 내 서류에 다 붙여놓는다고 했다. 그런 복사라도 해 달라고 했다. 받아서 보니 가격이 안적혀 있다. 그래서 가격 적고, 싸인도 하라고 했다. 너 이름 뭐야, 했더니, 이미그레이션 오피서다! 하더라. 다 챙겨넣고, 나 이번이 수단으로 첨 가는 거고,..
더보기
드디어 수단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는 건,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른 새벽, 아디스를 출발한지 꼬박 나흘만에, 수단에서의 1차적 목적지였던 포트수단에 도착하기는 했다. 완전 녹초가 되어 펄펄 끓는 열을 가지고 기침까지 하며, 입술은 부르터서, 또다시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선물, 빈대와 이들이 남긴 상처를 온몸에 잔뜩 지닌채, 그래도 12월 31일이 되기 전에 포트수단에 도착했으니, 목표대로 레드씨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뿌듯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다 무너져 내렸다. 여기는 포트 수단, 말 그대로 항구일 뿐 바다가 아니다. 방파제 안쪽의 물웅덩이 밖에 보이지 않고, 아침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일출의 장관 같은 건 없다. 제..
더보기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나의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땠나. 아침 일찍 일어나, 죽도록 싫어하는 병원에 가서, 병원에 가면 우울해지거든. CT촬영기계에 누워 추워서, 정말 추워서 덜덜덜 떨다가 얼음장 같은 몸을 일으켜 결국 피를 보고, 나름 사치한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 가서 아무 이상 없다는, 정말 운 좋다는 결과를 듣고 호텔에 돌아와 피 묻은 옷을 빨아 널고,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편지를 쓰고 있다. 뭐, 별로 나쁘진 않다. 그래도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니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제 안심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잠바를 빨다 보니, 주머니에서 뭔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만져졌다. 힘들게 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