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수단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는 건,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른 새벽, 아디스를 출발한지 꼬박 나흘만에, 수단에서의 1차적 목적지였던 포트수단에 도착하기는 했다. 완전 녹초가 되어 펄펄 끓는 열을 가지고 기침까지 하며, 입술은 부르터서, 또다시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선물, 빈대와 이들이 남긴 상처를 온몸에 잔뜩 지닌채, 그래도 12월 31일이 되기 전에 포트수단에 도착했으니, 목표대로 레드씨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뿌듯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다 무너져 내렸다. 여기는 포트 수단, 말 그대로 항구일 뿐 바다가 아니다. 방파제 안쪽의 물웅덩이 밖에 보이지 않고, 아침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일출의 장관 같은 건 없다. 제..
더보기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나의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땠나. 아침 일찍 일어나, 죽도록 싫어하는 병원에 가서, 병원에 가면 우울해지거든. CT촬영기계에 누워 추워서, 정말 추워서 덜덜덜 떨다가 얼음장 같은 몸을 일으켜 결국 피를 보고, 나름 사치한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 가서 아무 이상 없다는, 정말 운 좋다는 결과를 듣고 호텔에 돌아와 피 묻은 옷을 빨아 널고,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편지를 쓰고 있다. 뭐, 별로 나쁘진 않다. 그래도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니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제 안심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잠바를 빨다 보니, 주머니에서 뭔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만져졌다. 힘들게 꺼..
더보기
악몽같은 아프리카의 버스
그리고 지부티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루는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찻을 하며 시샤를 피웠고. 아, 그리고 터키 아저씨들을 만났다. 프랑스와 독일에 살고 있는, 그래서 한 사람은 프랑스어, 한 사람은 독일어만 하고 영어를 못 하더구만. 그래서 나의 모자란 터키어가 우리 사이에서 가장 잘 통하는 언어였다. 국제 이슬람 기구 같은 곳의 회원으로 이번 이슬람 명절에 자기들이 지원한 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를 보러 왔다는 아저씨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지부티에서 터키 사람들을 만나, 터키말로, 이슬람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될지는 몰랐다. 지부티에서 다시 디레다와로, 그리고 다시 아디스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프리카 여행 중 처음으로 버스가 지겹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에티오피아의, 아프리카의 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