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다.
파키스탄 훈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부터 알고 있던 지명이다. 그땐, 훈자에서
세시간이면 중국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는데, 중국에 갈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중국으로
가면, 한국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내일 가는 카슈가르도 마찬가지다. 그땐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다. 그렇게,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도시들을 이제 정말, 내 발로 밟게 되었다.
새벽 세시 반. 승무원이 깨워서 일어났다. 내가 샀던 환불표는 우루무치까지 가는 표가 아니라
우루무치 가기 전의 하미라는 곳까지 가는 표였거든. 그래서 표를 연장하려고, 승무원에게
몇번이나 말했었지만, 알았다고 기다리라고만 하더니, 하미라는 곳에 다 와가니까 깨우는 거다.
표 연장하라고.
일어나서, 내 자리에 누가 타는 사람이 없는가, 확인한 다음에, 연장을 해준다는 거다.
하미 역에 도착하기까지 40여분, 정차시간 10여분을 기다리고 표를 다시 끊는데 또 30분이
넘도록 담배연기에 찌든 복도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겨우 끝내고 와서 다시 누우니 다시
승무원이 와서 표 검사를 한다. 결국 해가 뜰 때까지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참으로 희한한 시스템이다. 자는 사람 깨워서 한시간도 넘게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어차피
인터넷 시스템 이용해서 표관리하는거, 미리 돈 받고 연장해줘버리면 될 것을.
아직 멀었다. 중국은.
해가 뜨고 나서야 겨우 잠든 나는, 기차가 도착하기 한시간 전에 일어났다. 놀랍게도, 40시간을
달린 기차는 단 1분도 연착하지 않았다. 인도 같았으면 적어도 서너시간은 늦어졌을텐데.
일어나서 아침 먹고 씻고, 짐싸고, 준비를 했다. 승무원들은 기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청소를
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얼른 매표소로 달려갔다. 가능하면 곧바로 카슈가르를 향해 출발하고 싶었거든.
매표소로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1000명은 족히 될 사람들이 매표소에서
바글바글하는거다. 한줄로 늘어선 것 같은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새치기 하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창구에 가까워지면서 새치기는 늘어만 갔고, 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그들의 입냄새였다. 무거운 배낭에, 입냄새에, 새치기에 시달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내가 타야할 기차는 떠나버렸다. 8년전에 비하면 그래도 새치기는 많이 나아졌다.
새치기 단속반도 있었고. 올림픽의 영향이리라.
한시간이 넘도록 줄을 서서, 내일 떠나는 기차표를 사고, 나는 혹시나 해서 조사해두었던
유스호스텔을 찾아나섰다. 역광장의 버스정류장에서, 이 버스가 **로 가나요? 하고 물었더니
안간단다. **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가, 글자를 보여주면서 손짓발짓으로 물었더니, 몰라,
하고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씨팔. 조금 기죽어서 잠시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어디까지 가서 내려서 갈아타고 가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타서는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한테 어디어디에서 나한테 말해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두개나 앞의
정류소에서 내리라고 했던거다. 덕분에 배낭메고 30분을 걸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이번에는
잘 내렸는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내가 찾는 호스텔을 모른다는 거다.
박물관 사람들한테 물어도 모르고, 경찰들은 내 말 같은건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썩을놈의
경찰 같으니라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는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엔 지쳐서 길가에 배낭을
벗어놓고 주저앉아 버렸다. 등짝의 땀을 식히고, 주변의 아저씨들한테 물어보니,
너 한국인이냔다. 그렇다고 했더니 조선족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그 사람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거기 있던 사람 중 한 여자가 나를, 근처에 있던 한국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한국인인 식당주인 부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직원 한명이 아는 모양이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동네를 물어물어 뱅글뱅글 돈 끝에 여길 찾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그 여자는 날 따라와
주었고, 음료수라도 마시고 가라고 붙들었지만, 아니라며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래,
사람들이 좀 무뚝뚝해서 그렇지, 중국 사람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