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투어가 끝나고, 북경에 돌아온 건 오후 네시. 수잔이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아 우리는
돌아갈 수 없어, 올림픽 경기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새집 모양을 본 떠 만들었다는 그 경기장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사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곧 쓰러질 것 같던 나는,
올림픽 경기장엔 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으로선 정말 대단한 일이겠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달래가며 집근처까지 가서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양꼬치와 북경오리 중 어떤 걸 먹고 싶냐길래, 오리 먹자고 했다. 수잔은 아주
푸짐하게 시켰다. 오리 한마리에 샐러드, 수프에 두부요리와 야채볶음까지 시켜서 만원 정도.
싸긴 싸더라. 맥주도 마셨는데. 정말이지 죽을듯이 피곤했지만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으니 힘이 좀 나더라. 과식을 하고는 남은 음식은 싸가지고, 드디어 돌아갈 수 있었다.
정말 피곤하고, 한없이 긴 하루였다.
다음날은 환전을 하고, 기차표를 사야했다. 둘 다 쉽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문 열린 은행 찾아 버스 타고 한참 나가야 했고, 내 목적지인 우루무치까지는
기차가 하루 한대밖에 없어, 자리가 없단다. 40시간을 앉아서 갈 수도 없는거고, 비행기표는
너무 비쌌다 첫날 미리 예약했으면 20만원 안되는 돈에 예약할 수 있었을텐데. 출발날짜가
가까우니, 값도 올라버린 거다.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수잔의 아버지가, 환불표 사면 되지, 라고 한마디 던지셨다.
수잔과 수잔의 동생이 인터넷과 전화통을 붙들고 두시간을 씨름한 끝에 지금 내가 가진
이 표를 찾아냈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로 구할 수 없었을 표다. 수잔의 동생이 표를 받으러
출발하자, 아버지가 또 한마디 던지셨다. 그거 혹시 가짜 아냐?
다행히 표는 가짜가 아니었던 모양으로, 난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를 타던 날은,
사실, 그냥 쉬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관광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수잔을 따라 또 나섰다.
천안문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그 근처의 북경시 도시계획 전시장으로 갔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모양이었다. 옛날부터 현재까지의 북경의 모습이, 그림과 사진으로, 그리고
미니어쳐로 잔뜩 만들어져 있더군.
지금 만들어진 올림픽 경기장도 있었고, 채택되지 못한 디자인의 모형도 있었다. 지금
만들어진 것보다, 나는 오히려 배 모양의 디자인과, 지붕이 열리는, 로보트 태권브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디자인이 더 맘에 들었지만,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채, 경기장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후다닥, 전시장을 구경한 후 기차안에서 먹을 걸 잔뜩 사서는 떠날 채비를 했다. 꼬박
2박3일을 기차안에서 보내야 하니, 먹을게 많이 필요하다며, 수잔이 이것저것 잔뜩 사줬다.
내 기차가 출발하는 북경서역은 엄청나게 컸다. 진짜 엄청나게 컸다. 하여간 중국은 모든걸
크기로 승부한다. 그 엄청나게 큰 역에서, 또 정말이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 기차의
내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수잔과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내가 너한테 받은거 다
갚을 수 있게, 한국에 꼭 오라고 하고, 수잔을 보냈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하루만에 기차는 꽤나 많이 달려, 서쪽으로 온 모양이다. 9시가 넘어도 밖은 여전히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