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비쉬켁에 도착했다. 말도 마라. 어제 하루가 내게 얼마나 길었는지. 지금 여기
South Guest House라는 곳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악몽 같았는지. 별 정보없이, 일단 현지에 가서
해결하는 스타일의 내 여행이, 나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발견하게 되는
이 나라의 매력은 또, 나만의 것이리라. 물론 그건, 그런 고생 끝에 별 탈 없이, 무사히 도착했으니,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중국에서부터 국경을 넘던 날, 모든 것은 대체로 순조롭게 흘러 갔다. irkeshtam pass를 넘어 중국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또 약간은 걱정이 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키르기스측 국경도 무사히,
걱정은 왜 했냐 싶게, 너무나도 순조롭게 통과를 했다. 어디에나 있을 줄 알았던 환전상은 없었지만,
오쉬에 가기 전까진 돈 쓸 일도 없을 거고, 쓸 일이 있다 해도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도와줄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중간에 타이어도 한번 펑크나고, 중국 국경에서 파키스탄 단체팀이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는 바람에
국경을 넘고 나니 이미 해가 기울어, 하룻밤 묵어가기로 되어 있는 곳까지의, 그 멋지다는풍경이
보이지 않게 된 건, 좀 안타까웠지만.
우리 버스는, 국경을 지나고 sary tash(내 추측이 맞다면 노란 돌이란 뜻일 거다)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다시 달려 오쉬까지 가는 거라고 했었다. 국경을 지나니 바로 검문소가 있었고,
거기서 화장실을 한번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붕도 칸막이도 구멍도 없는
화장실이다. 생각만 하고 있는데 현지인이랑 기사가 하는 대화가 들렸다.
sary tash까지 몇 킬로나 되죠? 60킬로쯤됩니다. 그러길래 그럼 안가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럼 1시간쯤 걸리겠네요? 아니오, 5시간 걸립니다. 예? 나도 처음엔 기사가
농담하는줄 알았다. 근데, 교대해서 운전하는 다른 기사가, 뭐라뭐라 설명을 하더니 5시간이 맞다는
거다. 그래서 화장실 갔다가 왔지.
현지말로 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먹는 내가 신기하지. 나도 신기하더라.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의
언어에는 터키말과 인도말이 꽤나 많이 섞여 있는 거다. 그래서 그 정도 대화는 알아먹게 된거지.
승객전원이 노상방뇨를 하고,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마자, 기사의 말이 사실이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밤길에 버스는 계속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야 했고, 게다가 길은 전부 비포장이었다.
덜컹덜컹 버스가 먼지속을 달리는동안 자기로 했다. 먹은 거라곤 12시쯤 국수 한그릇 먹은게 다여서,
배가 심하게 고팠지만, 뭘 먹고 싶은 기분도 아니어서 그냥 잤다. 자다깨다를 몇번을 반복해도 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버스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침대차니까, 기사도 두명이니까, 그냥하룻밤
묵어갈 필요없이 계속 달려 오쉬까지 가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중엔 추워서 몇번을 깼지만 버스에 놓여있던 이불은 더러워서 덮기 싫었고, 2층에 놓아둔 옷을
가지러 일어나긴 정말 싫었다. 온몸이 뻐근해질 때까지 쭈그리고 자다가는 결국 일어나 옷을 가져다
덮었지만 그래도 추워서 결국, 죽어도 덮기 싫던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났고,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창밖은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버스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고, 풍경은 조금 바뀌어 초원같은 등성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초원 위의 파오.
알지? 몽고 사람들의 집같은 텐트 말이야. 파오가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남자들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더라. 몽고에서 보기도 했었고, 눈뜨기가 귀찮아 그냥 다시 자려다 벌떡 일어났다.
이길이 얼마나 귀한 길인데, 내가 가는 길을지켜보는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자고있으면 안되지.
아직 완전하게 밝지는 않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기는 힘들었지만, 볼 수 있는 건 봐두자
싶어서, 밖을 바라보고 있엇다. 여기가 바로 그 실크로드구나. 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 중 초원길에
해당하는 곳이 여기가 맞구나 싶었다.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언덕은 전부 풀밭이었고, 옛날의 삶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타고, 파오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였다.
08/04/2008 06:2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