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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북경관광

다행히 수잔은 잠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어 주었다. 택시를 타고 수잔의 오피스 겸
집으로 가니 반갑게 택시비도 지가 내주고, 짐도 들어 주었다.

수잔은 지난 1월 수단의 와디할파에서 이집트 아스완으로 가는 페리 안에서 만난 아이다.
카이로에서도 꽤 오랜 시간동안 같이 지냈는데, 첨엔 매너가 없다고 한국, 일본 아이들이
싫어했지만, 몰라서 그랬던 것 뿐이라는 오해가 풀리고는, 정이 넘치는 아이라고 사랑을
받았었다. 내가 만난 첫번째 중국 여자 여행자였고, 저보다는 여행경험이 훨씬 많은 나를
수잔은 믿고 따랐었다.

중국에 오면 꼭 자기집에 오라고, 일본아이들이 말하는 가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쩜 이번 여행의 시작에 굳이 중국을 거쳐서 가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도
수잔 때문이었을거다. 바로 비행기 타고 키르기스탄으로 날아갈까, 중국 통해 갈까 고민하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수잔은 꼭 중국으로 오라고, 안되면 자기 회사에서 비지니스 비자라도
내 주겠다고 했었거든.

밤 늦게 도착하고, 수잔을 만나니 모든게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한없이 기뻤다. 계속 일이 잘
안풀리는 듯하더니, 다 끝난거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오기전엔 그저 이삼일 쉬었다 가야지 하는 생각이 다였는데, 어딜 가고 싶냐고,
다그쳐 묻는 수잔에게, 가고 싶은 곳 없다는 대답은 차마 할 수 없어, 자금성 천안문 이화원은
지난번에 봤으니까. 이번엔 그때 못본 만리장성 가고싶다고, 그 외에는 잘 모르니 니가
안내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엔 황제의 여름별장이었다는 천단(정확한 한국 발음을 잘 모르겠다)을 다녀왔고,

천단을 구경하던 중 만난 삐끼에게 그 다음날의 장성 투어를 신청했다. 보통 투어는 150위엔
(25000원 정도) 정도인데 특별학생할인요금으로 50위엔(8000원)에 해준다길래 신청해버렸다.

장성 가던 날은 흐렸다. 새벽 네시반에 일어나 다섯시에 온 픽업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우리
버스가 장성을 향해 출발한 것은 7시가 넘어서였다. 뭐, 투어라는게 다 그렇지 뭐. 이 사람
저 사람 모이는거 기다리고, 사람들 아침 먹는거 기다리고, 그러다보니 출발은 늦어졌고,
설상가상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장성에 도착하기까지, 끊임없이 가이드가 설명을 해댔지만 물론 나는 한마디도
알아먹을 수 없었다. 드디어 버스는 장성에 도착했고, 부슬비를 맞으며 우리는 장성을
올라야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안개가 심하게 끼어 경치감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건 아쉬웠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만들어 놓은 계단은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건 더 힘들었다.
손잡이로 만들어 놓은 철봉을 놓치면 죽는다 생각하고, 꼭 붙들고, 후들거리는 무릎을
달래가며, 머리를 풀어헤쳐 낭떠러지 아래가 보이지 않도록 시야를 가린채 겨우 내려왔다.

여행 시작하자마자 구경한 첫 관광으로는 빡시기 그지없었다. 왜 내 주변의 어떤 누구도
장성구경은 빡시단 말을 안해준걸까. 높은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며 무식한 놈들, 무식한 놈들,
중얼거렸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계단을 만들다니. 안그래도 요즘 무릎 아픈데 그날은 무릎
혹사의 날이었다.

장성은 끝났지만, 투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패키지투어가 그렇듯, 쇼핑시간이 남아
있었다. 옥제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더니, 바로 옥 판매장이 있었고,
점심식사 후에는 북경오리 파는 곳으로 갔다. 투어피 중에 2위엔은 오리고기 맛보기로
포함되어 있으니까 꼭 먹어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마지막 박물관은 역사를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관이었다. 시대별 사건을 중심으로
등신대의 인형을 실감나게 만들어 놓은 그 전시관은 비록 설명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볼만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으로 귀화한 대만 사람이 운영하는 보석상점에 갔다. 뭔소리인지는 몰라도 그
주인의 말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상술이 뒤어난 사람이었다.

07/03/2008 06:0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