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내 평생 가장 긴 시간을 달리는 기차이며,
내 평생 가장 비싼 기차다. 서울-울산 왕복 비행기보다 더 비싸니까.
이것도 겨우 표를 구해서 탄거니 쓰다 달다 말 할 수도 없는 거지만.
한국 떠난지 아직 일주일이 채 안되어서 생각한건, 내가 많이 지쳤구나 하는 거였다.
한달간 쉬고 다시 나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피곤하다니.
장성 때문에 그런 걸거라고, 좀 쉬면 괜찮아 질거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여행이라는 것 자체에 많이 지친 것도 사실일거다.
너한테 전화를 하고, 엄마한테도 전화를 하고, 중국 천진으로 가는 배를 탔다.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부터는, 사치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가장 싼 표를 샀었다.
침대도 없이 여러명이 바닥에 뒹굴며 자는 걸거라고, 단단히 각오하고 탔는데,
배는 아주 좋았다. 따로 객실이 없다 뿐이지 도미토리 방처럼 2층으로 된 침대에 베게,
이불에 커튼까지 있더라. 그것 만으로도 만족했지.
식당도 있어 밥 먹으러 갔더니, 한국돈, 중국돈 밖에 안받는다는 거다. 당분간 쓸 일
없을테니 한국돈은 다 써버리고 탔는데. 배안에 있는 개인 환전상도 한국돈 중국돈 밖에
안바꿔준단다. 밥 먹을 돈이 없어서 그러니 10불만 바꿔주세요, 라고 사정해서,
겨우 밥을 먹었다.
중국시간으로 1시에 도착한다던 배는 예정대로 항구 근처까지는 왔지만 폭우와 짙은
안개 때문에 항구에 대지 못하고 있었다. 세시간이 지난 네시가 넘어서야 항구에 닿았고,
내가 내린 건 5시가 넘어서였다.
입국관리소 직원이, 이런저런 이상한 나라들의 비자가 잔뜩 붙어 있는 내 여권을 붙들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러더니 여권을 나한테 돌려주는게 아니라 다른 직원을 불러 건네는 거다.
한참 기다려서, 부모님은 모두 한국사람이냐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겨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또 문제. 항구에는 환전소가 없는거다. 시간은 여섯시가 다 되어가고, 마지막 버스가 터미널
앞에 대기하고 있는데, 버스비도 없는 나는 버스를 탈 수가 없는 거다. 버스 앞으로 가서
차장 같이 보이는 여자에게, 달러 보여주면서, 이것 밖에 없다니까 뒤의 한국사람에게 말한다.
학생들 이끌고 온 교수님처럼 보이는 그 분이 버스 뒤를 돌아보면서, '지금 한국 학생 한 사람이
중국돈이 없어 버스를 못탄답니다. 바꿔주실 분 안계십니까?'라고 큰 소리로 물어봐 주신다.
다행히 한분이 바꿔주시겠다고 하셔서 '나 학생 아닌데요'라는 말은 그냥 속으로 삼키고,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만 하고는 16달러를 100위엔과 바꿨다.
산넘어 산, 땅인지 호수인지 모를 마당을 벗어난 버스는, 출발하자마자부터 교통정체에
시달렸다. 다행히 비는 멎어 있었지만, 도로는 호수가 되어 있었고,6시가 넘어가면서
퇴근시간이 시작되고, 버스는 달리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역주행도 하고,
인도로도 달리며 한시간 반쯤 지나자 버스는 길 밖으로 나갔다. 주유소였다.
이 나라 두 달 후에 올림픽 치르는 나라가 맞나 싶었다. 아프리카에서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도 신경을 써야할 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정상이라면 두시간 밖에
안걸리는 거리를 만원이 넘는 요금으로 운행한다면 더더욱.
주유소에서 삼십분을 보내고, 버스는 본격적으로 북경을 향했다. 세시간 더 달려 도착하니
밤 11시, 깜깜했다. 밤에 도착하는게 싫어, 낮에 도착하는 페리를 골라 탄거였는데.
너무 늦어 사람도 없고, 공중전화도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사람은 택시기사뿐.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영어로 전화 어딨냐고 물었다. 전화? 하고 중국말로 되묻는다.
그래 전화 어딨냐고, 라고 나도 중국말로 다시 물었다. 공중전화? 없어, 하며 자기 휴대폰을
건네준다. 수잔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늦어 이미 잠들어 있지 않기만 바라며.
07/03/2008 05:45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