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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무르갑의 평화로운 날들

밀린 편지를 열심히 쓰는데 '아니! 아니!' 하며 주인아줌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이 '안'이라고
했더니 나를 '아니!'라고 부르시더군. 나가 봤더니 따라 오란다. 날 데리고 부엌으로 간 아줌마는 과자
튀기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반죽을 밀어서 자르고, 모양을 내서는 튀기는. 그리고 막 튀겨내어
따끈따끈한 과자를 접시에 담아 먹으라고 주신다. 아줌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과자를 먹다가 나도
과자 만드는 걸 도왔다.

어제, 여기 홈스테이, 민박 같은 곳으로 옮겨 왔는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루 세끼 다
챙겨주시고, 음식도 아주 맛있고, 무엇보다 아줌마가 너무 좋다. 어제 바자르에 갈 때, 따라 갔다가
수박 사 가지고 오시길래 들어다 드렸더니, 그 후로는 얼마나 나한테 잘 해 주시는지.

하긴 힘들긴 했다. 그냥 평지에서 들고 걸어도 무거운 걸. 고도가 높은 이곳에서, 언덕길을 향해 들고
올라왔으니. 숨이 턱에까지 차서, 다 왔을 땐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어떡하냐, 10몇년 더 젊은
내가 들어야지.

들어올 땐, 5, 6일 있을 거니까 깎아 주세요, 하고 들어왔는데, 그래도 이런 시골에선 비싸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와서 있어보니, 결코 비싸지 않다. 온지 하루만에, 뱃살이 1센티는 두꺼워진 것 같다.
다이어트에는 치명적인 곳이다.


우리차는 8시쯤 무르갑에 도착했다. 그때엔 토하는 사람도 더이상 없었고, 좁은 자리에 불평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라고들 있었다.다들 지쳐 차안에서 널부러져
있을 때, 저기 멀리서 가물가물 신기루처럼 하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고, 나도 어둡기 전에 도착했음에 안도했다.

마을 입구부터 짐을 내리고, 사람들을 내리다가, 시내중심, 이라고 해봐야아무런 표시도 없지만, 에서
내렸다. 정보노트에서 본 게스트하우스는 만원이었다. 오쉬에서부터 같이 온 여자가, 자기집에 가자고
했다. 하룻밤 자고 내일 찾아보라고. 그래서 그 집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세수도 주전자에
받은 물로 하는 판국에 그런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차를 마시고, 빵을 먹고, 앉았으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가벼운 고산증 증상이었다. 같이 온
여자의 친척 아주머니가 머리 아프지? 하시면서 녹차를 마시라고 권하셨다. 여자의 동생이 두껍게
이불을 깔아줬다. 하루 종일 먼길에 시달려 지저분해진 내 몸을 집어넣기가 미안하게 깨끗한 이불 속에
들어갔다. 차 안에서 뒤틀리고 흔들려 부서질 것 같은 허리를 쭈욱 펴고 누우니,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달콤한 잠을 12시간 내리 잤다.

그리고 어제, 일어나서는 눈꼽만 떼고, 떡진 머리 그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이곳
무르갑에는 호텔이 딱 하나 있는데, 하룻밤 1500원인 그호텔은 전기도 물도 없는 폐허라고 알고
있거든.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나 홈스테이를 찾아야하는데, 듣던 정보보다 너무 비싼거다. 시즌이라
그렇겠지. 말 그대로 한철 장사니까.

몇군데를 둘러본 끝에, 언덕 위의 이 집을 발견했다. 식사포함 하루 8달러. 장기체류를 조건으로
깎은 요금이긴 하지만, 나는 그저 빵쪼가리에 스프나 나오는 식사인줄 알았더니, 끼니마다 메뉴도
바뀌며 멋진 식사가 나와 깜짝 놀랐다. 지프를 빌려 트레킹 가는거 말고는 정말 할 일 없는
무르갑이지만, 시간만 넉넉하다면, 열흘이나 보름쯤 머물고 싶어지는 기분좋은 곳이다.

오기 전 걱정했던만큼 고산병은 별거 아니었다. 어제까지는머리가 약간 아프긴 했지만, 이젠 그것도
다 나았고, 언덕길을 오르거나 좀 심하게 움직였을 때 숨이 차고, 무거운 이불 아래에서 뒤척이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기도 하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고, 여기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니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 똥누다 쓰러지지 않을까 했던 것도 나의 지나친
걱정이었던 것에 안심하고 있다.

아침부터 앉은채로 계속 편지만 쓰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을 나갔다 왔다. 고산지대라는 것을
감안해서 되도록 무리 안하고, 천천히 쉬엄쉬엄 두시간 반만에 동네 한바퀴를 돌고 왔는데,
산소부족인지 일사병인지, 그래도 심장이 아팠다.

오늘은 바자르 말고, 골목길로만 다니다가, 외떨어진 모스크까지 가서 그 옆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자들을 구경하고 왔다. 아이들은 나에게로 달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부끄럼 많은
여자아이들도 내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 정말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이제껏 다니던 다른 시골들보다도 더 시골인 듯하다.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때가 덜 탄 듯하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외치는 hello!에서도 알 수 있고, 가끔씩 들리는 니하!하는 중국사람 취급도 기분이
덜 나쁘다(하지만 에티오피아 후유증이 너무나도 심해서 아직도 그런 말들에 웃어줄만한 여유는
없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hello! 뒤에 따라 오기 마련인 one pen! 혹은 money!도 없다.

어제 이 집으로 옮겨왔을 땐,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오늘 아침 떠나버리자,
새로 들어오는사람도 없어, 나 혼자 남았다. 이 큰 집에 혼자 자는 것도 무서운 일이고, 내일은 나라도
동네로 나가서 삐끼질이라도 해야겠다.

오늘 아침 떠난 사람들은 벨기에에서 온 아줌마 둘의 그룹이었다. 가이드에 기사까지 넷. 딱 봐도 60은
훨씬 넘어 보였는데 정말 대단했다. 지프 대절해서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험한 길에 흔들리며, 이렇게
고도가 높은 곳까지, 힘들지않으신가 물어봤다. 나도 나중에 엄마를 데려오고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고.

자기들은 이제까지 여행을 계속 해 왔고, 고도가 높은 곳도 처음이 아니라 익숙하다고 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 좌변기만 쓰다가이런 푸세식이 불편하시겠지. 그리고 거친 음식이 조금 힘들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내 말에 감동들 하셨는지, 이분들은 나한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느린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그분들은 떠나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언덕 위의 이 집은,
나 혼자만의 차지가 되었지만, 그건 별로 행복하지 않다. 빨리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읽던 책은 벌써 다 읽고 다른 사람 줘버렸으니, 지금은 읽을 만한 책이라곤, 가이드북밖에 없는데.

 

08/07/2008 07:0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