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차가 출발하고 아이는 더 심하게 토했다. 당연한 일이다. 먹었으니 나올게 있는거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더 심한 고통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 아이가, 아니 그 아이의 엄마인지 할머니인지
모를 아줌마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다.
내 옆에 앉은 그 여자는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둘을 데리고 탔다. 어린 아이는
자기 무릎에 앉히고, 큰 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는 거다. 처음엔 그 아이가 다른 집 아이인 줄 알았다.
아무데나 가서 사이에 끼어들어 앉고, 이 곳 저 곳, 그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기대서는 토하고,
하는데도 나는 그 아이가 뉘집 아이인 줄 몰랐으니.
잠시 섰다가 다시 타니, 내 자리가 더 좁아져 있다. 자기 옆에 그 아이를 앉힌 거다. 자리는 늘어나지
않으니, 아이가 차지한 만큼 내 자리가 좁아질 수 밖에. 급기야는 흙이 잔뜩 묻은 신을 신은 채로 내
다리에 발을 올린다. 참지 못하고 성질을 버럭 내버렸다. 그 여자는 나에 대해서도 아이에 대해서도
아무말 하지 않고, 그냥 둔다.
나중에 보니, 그 어린 아이들은 둘 다 한 쪽 눈이 이상했다. 눈이 이상하니 멀미도 더 심했겠지. 불쌍한
아이들이었다. 견딜 수 없는 건, 그 아이들이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난다는
사실이었다. 그 여자를 계속 미워하는 내가 미워 견딜 수가 없는 거다. 불쌍한 아이 안아주지는 못할
망정, 다른 사람에게 안겨 내 다리에 흙발 얹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실망을 하는
거다. 난 안돼, 정말 최악의 인간이야. 스스로가 정말 미운 하루였다.
차는 산으로 들어갔다. 가드레일도 없는 천길 낭떠러지를, 식빵같이 생긴 우리 차는 비틀비틀,
흔들흔들, 이제라도 곧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불안, 산을 세 개나 넘었다.
3615미터짜리 첫번째 산 정상을 지나자 차는 멈춰 섰다. 앞자리에 타고 있던남자가 어디론가
달려 갔다. 자세히 보니 저어기 멀리 산자락에 파오가 한 채 서 있었고, 남자는 거기로 간 거였다.
나도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꽤나 추웠다. 선김에 화장실에나 가야겠다 싶어
좀 구석진 곳으로갔다.
하지만 나무가 한그루도 없어 다 보이는 거다. 더 멀리 갔다. 어지간해서는 우리 차에서, 혹은 달려오는
차들에서 다 보여, 꽤나 멀리 갔다. 시간이 걸릴까봐 뛰었다. 볼 일 보고는 차까지 또 뛰다가, 숨이
턱에까지 찼다. 여긴 3500미터가 넘는 고지인거다. 그냥 걷기만 해도 숨이 찰 곳을, 뛰다니, 미친
짓이다. 해발고도 3500미터 지점에서 노상방뇨하고 돌아오는 길에 죽고싶진 않아 뛰기를 멈췄다.
12시가 조금 못되어 키르기스측 국경에 도착했다. 말이 국경이지 참으로 허름했다. 콘테이너 상자
같이 생긴 건물이 두어개 있을 뿐이었다. 외국인 등록이 조금 걱정되긴 했다. 일본사람 캐나다 사람
다 필요없는게 한국사람에게 필요할 리 없어, 하며 안하고 뻐팅기긴 했지만, 맘 한곳에서는 여전히
조금 걱정스러웠던 거다. 하지만 걱정은 필요없이, 아무일 없이 통과가 되었다. 국경 직원들에게
태권도! 하는 인사를 들었을 뿐이다.
높은 산이라 그런지, 사무실까지 계단 몇개를 밟아 올라갔을 뿐인데 숨이 찼다. 그리고내가 차로
돌아왔을 때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권 보고, 몇가지 적고, 출국 도장을 찍는 것 뿐인데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고, 우리 차가 다시 출발할 즈음에 비는 우박으로 바뀌어 있었다.
7월에, 한여름에 우박이라니. 과연 세상의 지붕이라 추운 거다.
키르기스측 국경을 지나고 한참을 더 달려 두번째 4282미터짜리 산 꼭대기의 타직측 국경에 도착했다.
여긴 더 허접해 커다란 드럼통처럼 생긴게 두어개 있을 뿐이었다. 숨이 찬 건 나 뿐이 아닌 모양으로
국경직원도 나한테 헐떡이며 질문을 했다. 현지인들도숨이 찬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더라구.
역시나 오래 걸리는 국경에서 차안에 앉아 졸다가, 갑자기 숨이 막혀 벌떡 깼다. 역시 4200미터 넘는
곳은 가만 있어도 숨이 차오는 곳이다. 창문을 열고, 몇번 심호흡을하고 나니 나아졌다. 이제까지
내가 넘은 가장 높은 국경, 보름만에 갱신이다.
08/07/2008 06:1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