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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만년설을 발 아래에 두다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밖은 바람이 불어 많이 춥지만, 차 안은 태양빛에 더웠다. 또 졸아가는 참을
수 없는 더위에 깨어났다. 겨울 잠바를 껴입고 있으니 덥지. 깨어나니 우리 차는 호수 옆을 달리고
있었다. 지도상에서도 꽤나 크게 보이는 karakul 검은호수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모르겠다 싶게, 호수는 푸른 색이다가 에메랄드 그린이다가 했다.
졸려서 눈을 반도 못뜨고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나올리 없었다.
이런 산꼭대기에 믿을 수 없는 넓은 평지가 이어지고 있었고, 도로는 계속 눈산을 향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참 지독하구나 생각했다. 이런 산속의평지도 찾아내어 전기도 들이고, 길도 닦고,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다니.

호수 근처에서 차는 멈췄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시각은 네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뭐가 있냐니까 현지말로 설명을 하길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웃으면서 부엌으로 불러 보여
준다. 쌀이 있었다. 오~ 쌀. 이번 여행 시작하고 처음 보는 쏼이었다. 밥 달라고 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내 밥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고기만 먹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고기 한 접시가 900원, 밥 한 접시가 1500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고기만 먹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이지 밥 먹을 돈이 없어 고기 밖에 못먹는 세상이 여기에 있었다.
사진 찍으러 가려고 잽싸게 밥을 먹고 나왔지만, 호수는 너무 멀었다.

그러고 있는데, 유럽 남자들이 떼로 들어왔다.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진 순간이었다.
12명이 함께 자전거로 파미르 하이웨이를 넘는 중이라고 했다. 차안에 가만히 타고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차는데,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는 산을 자전거로 넘다니.

사실 그런 사람들을 처음본 건 아니다. 4년 전 이란에서도, 파미르고원 지나왔다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으니까.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도전할 만한 곳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도전한다면 지금,
여름철이 가장 좋을거고.

그래도 그 사람들은 좀 편하게 다니는 편이었다. 그룹으로, 짐은 따로 모아 차량으로 운반하고
있었으니. 의료진도 따라다니는 모양으로, 우리차의 할머니가 힘들어 하시자 혈압도 재 주었다.
그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도 현지인들처럼 서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차는 다시 출발했다가 한 시간 쯤 후에 또 한번 잠시 섰다. 마지막 고개 Ak baital pass를 넘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pass는 한국말로 하자면, 글쎄, 높은 산 속으로 억지로 뚫어놓은 길, 이라고 하면
될까. 4655미터짜리 길을 통과하기 위해서, 개울물을 퍼다가 냉각수도 준비하고(눈녹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라, 그대로 냉각수가 된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나름 산넘을 준비들을 한 후, 차는 산으로
들어갔다. 우리 식빵차가힘겹게 힘겹게 한을 오르는데, 건너편 눈산은 내 눈아래 있었다.

만년설이 내 발보다 아래에 있다는 건 참 신기한 느낌이지만, 이번 무르갑행에서 또 한번 느꼈다.
역시 인도의 스리나가르- 레- 마날리를 잇는 길보다 더 빡신 길은 없다고. 거긴 400킬로 조금 넘는
길을 1박일씩 가야하고, 가다 보면 버스 엉덩이가 만년설을 때리면서 지나가거든. 게다가 5000미터가
넘는 지점을 통과하기도 하고. 중간에 하룻밤 자고 간 마을이 4500미터랬으니까.

처음 넘은 험한 길이라 그저 그렇게 기억되는 것 뿐인지, 실제로 그랬는지, 거긴 계속 꼬불꼬불 산길을
달린 듯하고, 평지를 달린 기억은 거의 없는 것에 비해서, 파미르는 산을 넘을 떄 외에는 길도 줄곧
평탄하고, 포장도 나름 잘 되어 있는편이라 그때보단 덜 힘들다. 무엇보다 인도의 그 길은 여름 한철,
3개월 동안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인데, 여긴 춥긴해도 1년 내내 겨울에도 갈 수는 있는 길이거든.
어렵고 험한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아직도 인도의 그 길과 비교하게 된다.

 

08/07/2008 06:3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