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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새해, 터키 새해 첫날, 삼겹살과 떡과 오뎅을 잔뜩 싸들고 카이로에서 이스탄불로 날아 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동전을 넣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카트 앞에 서서, 쌍욕을 한참 해댄 후에 양팔에 짐을 껴안고 공항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시스템에 대해서 또 한참 욕을 해댔다. 그래도 오랜만에 터키 오니 좋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니 참 좋다. 어제는 밖에 한번도 안나가고 점심엔 신라면에 계란 풀어서 먹고 (뽀글이 아닌 신라면을 끓여먹는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저녁엔 내가 사온 돼지고기로 제육볶음을 만들어 배를 불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술탄아흐멧 거리를 돌아다녔다. 역시, 이 거리는 현지인들만 쏙 빼놓으면 정말 완벽한 거리다. 터키다. 괜히 설렌다.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9 - 귀경 무사히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장장 열일곱시간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버스를 타고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까지는 모험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미쳤구나. 물론, 예전의 여행들을 생각한다면 열일곱시간짜리 버스 한번 타는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최근의 나는 편한 것들에만 너무 익숙해져 왔다. 그래, 가끔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12월 시리아에서 돌아오던 때의 열 네시간 이후로 처음 탄 장거리 버스잖은가. 아니구나, 2월 체코에서 바르샤바를 거쳐 빌니우스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던 길도, 언니가 죽은 줄 알았다 싶게 힘들고 긴 길이긴 했다. 아무튼, 다음의 여행을 생각하면, 나는 이런 연습을 가끔씩 해 둘 필요가 있다. 1년동안 벼르기만 하다 온 트라브존. 그동안 본 영화가 몇 편이며, ..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7, 8 - 리제 4월 19일, 4.19다. 그래, 이런 것들도 잊고 산지 이미 오래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마음까지도 다 가지고 나와서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샌가 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딱 두 캔만, 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맥주가 끝나버리자, 어중간하게 마셔서 그런지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졌고, 결국 벌떡 일어나서 사러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어제 둘이서 마신 맥주가 열 캔. 미쳤지. 잘도 마셨지. 그래도 어젯밤엔 재밌었다. 일주일이나 같이 지내면서도 필요한 말 외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과,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내 이야기도 많이 했고, 저 친구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오랜만에 웃기도 하고, 그렇게 맥주가 다..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6 - 트라브존 여유 오늘은 일부러 빈둥빈둥 하루를 보냈다. 어제 다녀온 수멜라 수도원이 상당히 만족스럽기도 했고, 내일 밤이면 트라브존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트라브존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씻고, 빨래하고, 어제의 일기를 쓰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후에 잠깐 바다에 다녀오리라, 그게 다였다. 귀찮아서 안가겠다는 친구를 남겨두고 혼자 바다로 갔다. 삼십분을 조금 넘게 한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이름 때문인지 검게 보이는 흑해를 바라보며, 어제보다 훨씬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는 기억들을 바라보며. 추웠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좋지는 않았다. 물론 술탄 아흐멧의 그것 같지는 않았지만. 한시간만에 ..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5-2 수멜라 수도원 수멜라 수도원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신라면 먹기. 이것이 이번 트라브존행의 목표였다. 시간도 됐으니 라면 먹어야지. 다시 그 식당 아줌마한테 갔다. 뜨거운 물 있나요? 맘 좋은 아줌마가 흔쾌히 뜨거운 물을 따라 주셨다. 포크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면상 두껍게도 포크까지 빌려서 밖으로 나갔다. 난간에 앉아 계곡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들고 앉아 있으려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인생 별거 아니야. 이정도만 되어도 이렇게 행복한 걸. 따뜻한 햇살 아래서 컵라면을 국물까지 후룩후룩 다 먹고나서는 뜨거운 물도 얻었으니, 차이라도 팔아줘야지, 하며 다시 아줌마한테 가서 차이를 두잔 받아서 나왔다. 아줌마가 차이를 따르는 동안 밥 먹던 아저씨들이 일본이 어쩌고 하길래, 아니라고 우린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