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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파루스키, 파루스키~

깨어났을 땐, 두샨베에 도착해 있었다. 시각은 12시를 넘어가고있었다. 호텔명을 대자 기사가 택시를
잡아 준다. 다행히 그 호텔은 꽤나 유명한 호텔인 모양으로 기사가 한번만에 갔다. 하긴 시내 한중간에
있는호텔이고, 도대체 두샨베에 호텔이 열개는 될까 싶을만큼 호텔이 드무니까. 그렇게 유명해서
쉽게 찾은 것까진 좋았는데, 방값이 비쌌다.

내가 그호텔을 찾아간 건, 거기에 두 종류의 방이 있어, 싼 곳은 5-6달러면 잘 수 있단 얘기를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가격은 트윈룸의 침대 하나만 빌리는 조건으로 15달러. 리셉션에
앉아 있는 러시아 아줌마한테 영어 좀 하십니까, 했더니, 좀 한다길래 물어봤는데 말이 안통한다.

내가 듣기로 방이 두 종류가 있다는데.
그래 방에 침대 두 개 있다니까.
그게 아니고 두 종류의 방이 있어서 하나는 비싸고, 하나는 싸다던데.
여기 싸잖아, 15불 밖에 안해.
더 싼 방은 없나요?

거기까지 갔을 때 아줌마는 내 여권을 집어던지면서 싫으면 딴데 가라는 식으로 나왔다. 도무지
인내심도 동정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차근차근 들어볼 생각은 않고, 12시가 넘은그 시각에 어디로
가란 말인지. 하는 수 없이 하룻밤만 묵기로 했다. 내일 당장 다른 호텔로 가 주리라 생각하면서.

내 방에는 다른 할머니가 찻잔에다 틀니를 담가놓고 자고 있었다. 문 두드려 깨워서 들어가 많이
미안했지만, 여긴 다 그런 시스템인 모양으로, 아무 때라도 문을 두드리더라. 할머니도 별 기분나쁜
기색이 아니었고.

늦었으니 세수만 하고, 아침에 샤워를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할머니 말을 들어보니 물이 안나온단다.
이 비싼 호텔에 물이 안나오다니. 피티병에 담겨있는 물로 세수만 하고 자려고 했더니, 물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해버렸다. 소란스럽게 굴어 할머니한테는
미안했지만, 또 언제 물이 나올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더군다나 내일 아침엔
이란 대사관에 가야하는데. 대사관에 갈 때만큼은 가장 깔끔한 모습으로 가야 무시 안당하거든.

샤워를하고, 머리는 말리지 못한채, 자리에 누운건 두시 반. 할머니는 옆에서 드렁드렁 코를 골며
주무시고, 나는 아직도 두개골이 흔들리는 듯 어지러웠다. 몸은 죽어라 힘들고, 잠은 안오고, 계속
뒤척이기만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나. 이번엔 할머니가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에 깼다.

텔레비젼을 켜 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시각은
다섯시 반. 밤에 내가 한 짓이 있으니 화도 못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금 더 자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일곱시에는 일어나고 말았다. 일어나니 할머니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주며 먹으란다.

지난밤의 코고는 소리도, 아침의 부산스러움도 다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허기와 갈증에 나는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거든. 일하러 가시는건지. 볼 일 보러 가시는 건지 동료들과 함께 나가신 후,
나는 그 간단한 음식을 먹고, 세수를 하고, 짐을 대충 정리한 후, 이란대사관으로 향했다.

그래, 내 평생 다시는 이란비자 따위 내 여권에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투르크멘 비자를 받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는 거였다. 영어 못하는 직원과 씨름을 하고 있으려니, 영어하는 영사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저쪽 가서 신청서 작성하고, 사진 두 장과 함께 가져오면 내가비자 줄게, 인샬라.
오랜만에 들은 인샬라였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인샬라였지만, 어쨌거나 신청을 하고 나는 호텔을
찾으러 나섰다. 일본 가이드북에서 본 가장 싼 호텔은 서커스장 뒷편에 있었다. 구소련 지배하에 있던
중앙아시아의 각나라들은 아직 서커스가 성행하는 모양이더라구.

여기 아줌마들은 파미르지역과는 정말 다르게, 그래야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정이 안간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해도 받아주는 일이 없고, 무얼 물어봐도 답은
딱하나, 다 똑같다. 파 루스키! 러시아 말로 해! 하는 말이다. 남자들은 그렇지도 않아길 물어보면
알려주고, 인사도 먼저 해 오고 하는데 말야.

방값 물어보니 35소모니(1만500원)란다. 예상보다 배는 비쌌지만, 저집보다는 15소모니가 싸니,
그것도 열흘이면 큰 차이니까, 하는 수 없이 옮겨야했다. 전날 잔 호텔에서 가방을 챙겨 다시 오니
이번엔 40소모니란다. 아까 35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 사람들이 적어준 종이를 들이밀었더니,
손을 휘저으며 40이란다. 싫으면 가란다. 이 더운날 가방까지 떠메고왔더니.

알았다고 방 달라니까, 여권 내 놓으란다. 대사관에 비자신청 때문에 맡겨놓고 없다고, 복사본을
내밀었더니, 여권 내놓으란다. 그럼 대사관 가서 증명서 받아 올테니 가방을 잠시 맡아 달라고 했더니,
다 가져가란다. 사정 설명을 하려고 하면고개를 홱 돌리고 손만 휘저으면서, 파루스키, 파루스키만
연발한다. 나도 짜증이 확 났다. 도무니 장사를 할 생각도 없고,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거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호텔은 정부운영 건물이라는군. 그러니까 손님이 오든 말든 신경도 안쓰지.

 

08/08/2008 07:0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