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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두샨베 열흘째

두샨베 열흘째, 투르크멘 비자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정말로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더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어제, 오늘 이틀은 좀 낫다. 좀 시원하다 싶어 보니 38도더군. 매일 40도를 훨씬
넘다가, 구름 끼고 안개 끼니 38도. 훨씬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열흘씩이나 뭘할까. 당연히 인터넷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중앙아시아는 아프리카보다도
인터넷 쓰기가 힘든 곳이라는 걸. 인터넷 가게도 없고, 몇 안되는 곳 다 뒤져봐도, 한글이 읽히는 곳조차
없는거다. 그러다 딱 한군데 우체국에서 한글이 읽히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요즘은 우체국이 문을
여는 날이면, 버스 타고나가 서너시간씩 다리가 퉁퉁 붓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쓰다가 온다.

한글이 안돼서 끙끙거리다가, 결국 엉성한 대만 프로그램 다운 받아서 쓴다. 예전에 내가 네이버
한글입력기 편하게 쓰고 있을 때, 일본 사람이 그 프로그램 쓰고 있길래, 어머, 니네는 웹상에서 직접
입력하는 입력기 없니? 하고 웃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네이버 한글입력기 서비스가 없어져
버려서, 내가 그 얄궂은 프로그램 쓰고, 일본어는 웹상에서 입력하는 편한 방법을 쓰고 있다. 그래,
그렇게라도 입력할 수 있는게 어디냐고 고맙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다. 일본은 되는데, IT강국인 한국은 왜 안되느냐고. 그래서 동생 달달 볶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되는게 없다. 그것 말고는.

이 호텔에도 꽤나 많이 익숙해졌다. 쌈닭 같은 아줌마들 중 한명과는 웃으면서 인사도 하게 되었고.
좌우지간 이상한 사람들이다. 처음 일주일간은 스트레스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더럽고, 열쇠가
없는 건 그렇다 치고, 하루에도 수십명씩, 방문을 열고 불쑥불쑥 들어오거나, 잠긴 방문을 밀고, 노크를
해대는 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

하루라도 무슨일이 생기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없다. 첨엔 그렇게 방값 때문에 매일 씨름을 하게
하더니, 약을 친다고 손님들을 전부 밖으로 내몰지 않나, 양탄자를 새로 깐다고 복도를 다 뒤집어
엎어놓질 않나. 한번은 일어나니 호텔 전체에 물이 안나오는 거다. 밖에 나갈 일은 없으니 세수는
안해도 되지만, 화장실은 가야 하는데. 미리 말해줬으면, 피티병에 물이라도 받아놓지.

참고 참다가, 비어있는, 복도 건너편 방으로 가 봤다. 변기를 살짝 건드려보니, 물이 들어있는 듯해서,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가 똥누고 나오다 하마트면 갇힐 뻔했다. 밖에서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려 얼른
뛰어나가 문을 두드렸지. 민망했다. 설상가상 변기에는 물이 없었고.

실제로 갇힌 적도 있다. 자고 일어나니 두 방이 같이 쓰는 출입구의 문이 잠긴 거다. 옆방에 들어온
일본애들이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나가 버린거지. 청소하는 아줌마가 한참이나 열쇠통을 뒤져,
이 열쇠, 저 열쇠 다 꽂아본 후에야 겨우 열어줬다.

일주일에 두번 정도, 시트를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걷어서 주고, 받아서는 내가 까는 거다.
그거야 뭐, 내가 해도 상관없지만, 꼭 내것은 너덜너덜 다 찢어지고, 구멍나고, 누더기 걸레같은 걸
갖다주는 거다.

그래도 나는, 이 성질 더럽고, 할말은 꼭 하고 넘어가는 내가, 아무말 하지 않는다. 비자를 받고, 이곳을
뜨기까지 되도록 아무런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거다.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사람도 이제는 없으니까.
그 아프간 사람? 늘 그렇듯 또 딴소리 하길래 잘라버렸다. 한두번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헛소리하길래,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버렸지.

고맙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내치긴 싫지만, 혼자 여행하는 여자 여행자만 보면 덤벼드는
그런 놈들이, 정말 너무너무 싫다. 이래서 혼자 다니면, 현지인 남자들이랑은 아예 대화도 하기
싫어진다. 그놈을 그렇게 잘라버린 후, 영어도 쓸 일이 없어졌다. 입에서 곰팡내가 날 지경이다. 나도
참, 시집가긴 글렀다. 이 나이에 혼자 이렇게 다니면서, 10년이나 어린 놈이 나 좋다고 달려들면,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좋기는 커녕, 왜 이렇게 싫은지. 재고의 여지도 없다. 딱 싫다.

 

08/11/2008 04:3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