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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내가 가는 길, 나를 기절하게 하는 길

두샨베까지의 차비는 비쌌다. 꾸역꾸역 끼어타고, 오르막길 시속 5킬로를 자랑하는 식빵차가
100소모니(3만원), 조금 편하고, 훨씬 빠른지프는 150소모니(4만천원)이다. 총 거리 600킬로 조금
넘는 거리인데, 게다가 국내를 이동하는건데, 지나치게 비싸다 싶었다.

사람들이 다들 지프를 타란다. 식빵차 타면 내일이나 돼야 도착할거라고. 지프를 타면 밤 10시나
11시에 도착한다는데 그 시각에 도착해서 또 호텔 찾느라 애 먹느니, 차라리 식빵차를 탈까도 싶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더 모이면 출발한다는 지프가 있어, 타기로 했다. 그 남자에게 주려고 했던 차비
60소모니가 굳었으니, 좀 편하게 가보기로 한거다.

하지만, 맨 마지막 남은 자리는 7인용 지프의 맨 뒤, 2인용 자리. 옆으로는 넓어도, 앞뒤, 위아래로는
좁았다. 그래도 지금 출발하면 평균시속 50킬로로만 가 줘도 저녁 8시에는 도착할 터였다. 이 동네
차들이 늘 그렇듯 여기서 한 사람 태우고, 저기서 짐 싣고, 기사 자기집에도 들렀다가, 그렇게
출발하면서 한시간 이상을 지체하더니, 그래도 처음엔 시속 60킬로를 유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을 따라 비교적 완만한 길을 가던 차는 곧 험한 계곡길로 들어섰고, 이제 곧 끝나겠지,
저 산만 넘으면 끝나겠지 하던, 비포장에, 좁고, 완전 꼬불꼬불, 가드레일 따위는 절대로 없는, 바로
옆은 천길 낭떠러지인 길은 두샨베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전혀 이런 길을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준비했던 파미르 하이웨이는 오히려
평탄했는데, 소문에도 들은 적 없는 하록-두샨베 길이 이렇게 험할 줄이야. 왜 아무도 내게 이 길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을까. 이 길이 예쁘다는 말은 얼핏 들은 기억이 나지만, 예쁜 길이라는 것이,
결국 엄청나게 험한 길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었다.

이 험한 길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우리 지프는 낼 수 있는 만큼의 속력으로 달리며 추월을
해댔고, 나는 차라리 속도가 느린 식빵차를 탈 걸, 하록과 와한밸리 보고 올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이 길을 다시 오지 않을게 뻔하니까.

계속해서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달리며, 이제라도 저 까마득한 계곡으로 굴러 떨어질 듯 위태위태
차가 달리는 동안 나는, 맨 앞에 앉은 여자와, 차의 왼쪽편에 앉은 사람들의 강심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을 수 있다니, 졸 수 있다니!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잠시도 졸지 못하고, 굴러 떨어졌을 경우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한 손잡이를 어깨가
빠져라 부여잡고, 무슬림처럼 기도하고 있었다. 비스밀라히 라흐마니라힘. 차가 뒤집어지거나,
길 밖으로 벗어나 굴러떨어지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한번 굴러떨어져
뒤집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그게 그닥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죽음이란 것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정말, 언젠가는 이런 길에서 굴러 떨어져 객사하게
되는 걸까. 나는 앞으로 이런 길을 몇번이나 더 가게 될까. 정말이지 무섭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도록
위험한 길, 하지만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한 길. 그런 길이 내가 이제껏 지나온 길, 앞으로갈
길이 아닐까 생각하니, 무릎에 힘이 풀리기도 하지만, 역시 내 길은 기대만빵이다.

오후 세시가 다 되어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도 그런 길은 계속 되었다. 아니 하일라이트로 아찔한 길이
펼쳐졌다. 금강산 같은 절벽 위를 달리는가 하면, 산에서 내려온 물로 곧 무너질 것 같은 길도 달렸다.
어떻게 여기를 트럭들이 지나갈까 싶은, 나는 작은 승용차로도 몰고갈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길도
있었다.

가장 두려웠던 길을 지나면서, 내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운전하는 기사도 죽고 싶진 않겠지. 그만큼
길을 잘 알고, 차를 잘 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겠지. 그냥 경치감상을 했다.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고, 우리차는 아직도 두샨베를 200킬로가 넘게 남겨두고 있는데, 산길은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같이 탄 아저씨들이 갈라주는 사모사와, 평소엔 잘 안먹는 스니커즈까지 먹고, 장기전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밤늦게 두샨베에 도착하고,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비쉬켁에서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먼지 속에서 스니커즈를 먹고, 때문은 손으로 건네주는 사모사를 마찬가지 더러운 손으로 받아서 먹고.
더럽다, 하는 생각보다,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먼지와 때를 양념삼아 에너지를
비축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차는 헤드라이트를 켰다. 낭떠러지 길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는 기절했다. 정말, 잠이 들었다기 보다는, 기절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지프의 맨
뒷자리에서 엄청나게 흠들리며 먼지 바람을마시고, 엄청난 긴장감에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거다.

한순간 눈에 촛점이 안맞고 어지럽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맨땅에서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다.
소리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웅웅거리고, 시야가비디오카메라를 보는 듯 흐리고 흔들렸다. 그렇게
의식이 몽롱해져 가다가 나는 한순간 기절해버린 거다.

 

08/08/2008 06:3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