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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카라콜

설사다. 시작한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이번 여행에서 벌써세번째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설사다.
두달전 인도에서 만난 아이가, 자기는 인도 수돗물도 그냥 마실 수 있다며, 인도 1년 여행 후에 일본
돌아가서 검사해보니, 장에 스무가지의 항체가 생겼더라며, 나더러 인도 수돗물 마실 수 있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너도 가서 검사해봐, 항체 많이생겼을걸, 하길래 그런줄 알았거든.

이제 어지간해서는 설사는 안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갖고 있던 지사제는 남들 다 줘버리고,
일본 친구한테 받은 정로환만 남겨뒀었는데. 내가먹게 될줄은 몰랐다. 작년 11월 소말리랜드 이후로
이런 지독한 설사는 처음이다. 그땐 오랜만에 만난 생선에 환장해서 매일 생선튀김을 먹었었거든.
그 엄청난 파리떼를 봤을 때, 주방의 위생상태를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땐 똥에서 나던 생선비린내
때문에 설사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원인도 알 수가 없다.

촐판아타에서 수영을 하고, 들떠서 다음날도 또 수영할 준비를 했다. 안에 수영복을 갖춰입고,
썬크림도 바르고, 나서는데, 바깥공기가 심상찮은 거다. 창으로 보이던 하늘은 맑았는데, 문을 열고
나간 반대쪽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이대로라면 수영하기는 글렀다 싶어 잠시
기다려봤지만, 날은 점점 더 흐려졌고, 결국 수영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비까지 내렸다. 촐판아타에만 일주일쯤 있다가 바로 오쉬로 갈까도
생각했었지만, 바로 짐을 쌌다. 맨 밑에 들어 있던 수영복 꺼내느라 3주만에 처음으로 풀어헤친 짐을
싸서 짊어지고는 카라콜이라는 곳으로 갔다. 이스쿨의 오른쪽에 있는 도시이고,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의 거점으로 삼는 도시지. 나는 특별히 트레킹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거기에서 다른 길을
통해 오쉬까지 천천히 내려갈 생각이었다.

카라콜에 도착해서 책에 적혀 있던 숙소를 찾기까지는 순조롭게 갔는데, 숙소가 너무 비쌌다.
중앙아시아에 생긴 최초의 백패커용 숙소라고 나와 있었지만 가격은 백패커용이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더 싼 숙소나 홈스테이를 찾으러 다니긴 귀찮고 해서, 1박만 하고 뜨려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동네구경을 나섰지. 가이드북의 지도를 봐서는 꽤나 큰 도시인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넓지는 않아, 걸어서 다니기 딱좋았다.

놀라웠던건 차이니즈 모스크. 가이드북에 나와 있길래 아무 기대없이 갔는데,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언뜻 보기엔 나무로 된 절처럼 보이는데, 모스크인거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단층짜리 그 수수한 조각같은 모스크에 나는 감동했다. 목조건물에는, 돌이나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에서 느낄수없는 정취가 있다. 여건만 되면 한국이나 중국의 절 같은 그 모스크의 정원에서
잠시 쉬다가 오고 싶었지만, 남의 예배당에 이교도인 내가 오래 머물수도 없는 일이라, 사진만 찍고,
인사를 하고는 나왔다.

그날 본 또하나의 목조건물은 교회였다. 전통적인 러시아정교의 교회였는데, 목조인거다. 우리가
동유럽에서 봤던 그런 교회인데 나무로 만들어진거다. 이 교회도 예뻐서 한참 구경하다 왔다.
사실 이교회도 관광객에게개방된 교회는 아닌 듯 했는데, 열려 있어서 들어가 본거다.

그리고 그날발견한 중국식당에서(중국식당은 아니었는데, 중국음식도 팔았다) 락면을 먹었다.
음, 국물이 거의 없는중국식 라면이라고 하면 될려나. 수타면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아주 맛있다.
중국에서도 즐겨 먹던 거였는데. 모든 음식이 고기뿐인 키르기스에서 면을 만나 반가웠던 거지.
그리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 씻고, 슬슬 준비하고, 다음날 일찍 떠날 채비를 해야하니까.
그런데 돌아가서 보니 호텔이 영, 괴기스러운 거다.

 

08/06/2008 07:5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