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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이스쿨에서 수영하다

촐판아타까지는 금방이었다. 네시간 정도면 금방이지. 내려서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사람들이 어디가느냐고 물어왔다. 싼 숙소를 찾는다고,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통할리 없었다.
cheap hotel을 찾고 있어요. ..음.. 칩호텔, 칩호텔, 이봐 누구 칩호텔이라는호텔 아는 사람 여기 없어?
그런 식이다. 아저씨가 택시를 타라길래, 아니라고 하고 있는데,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개인 홈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그 무슬림여자 덕에,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는 그 여자를 따라 호수로 갔다. 호수, 라고는 하지만 여기도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다.
하지만 호수 건너편으로 눈덮인 천산산맥이 달리고 있어, 바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진에서
본대로였다. 파란물이 넘실거리는데 뒤로는 만년설 이고 있는 산맥이 달린다. 그걸 보고 싶어
여기에 온 거였다.

여기는 지금이 시즌이다. 겨울은 추워서 수영을 못하니, 지금 여기 키르기스에서 가장 큰 호수에,
몰려들어 이른바 호수욕장에서 수영들을 하는거다. 호수욕장의 비치는 대부분이 호텔이나 개인의
전용비치가 되어 있어, 좁은 퍼블릭비치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붐볐다.

국민의 3분의 2가 무슬림인, 이슬람국가라고는 상상도 못할 차림들로 다들 즐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휴양객 대부분이 러시아 사람들이었거든. 바다가 없는 나라지만 호수는 엄청나게 많아,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아먹고, 할 건 다 한다. 나도 이번에는 꼭 수영을 하리라 맘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수영복을 속에다 입고 호수로 갔다. 전에 터키 왔을 때, 니가 사서 한번 쓰고, 나 주고
간 수영복 기억나냐? 형광 오렌지 색의, 지나치게 화려한 색이라, 이제까지 한번도 입지 못하고,
들고만 다녔었다. 도저히 차마 입기 힘든 수영복이었다. 이번에 드디어 입어 본 거다.

복대는풀어서 가방에 넣어놓고, 돈도 카메라도 전부 방에 두고 물병만 들고 갔다. 사실 수영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대는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내 전부가 들어 있으니까.

한낮이라 햇볕은 아주 뜨거웠고, 모래사장엔 사람들이 뒹굴어 발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10분 정도만
수영하고 돌아가야지. 첨엔 그런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복대 풀러놓고 온 게 좀 불안하니까. 우선 발을
담가 봤다. 꽤나 차가웠다. 눈산이 바로 뒤에 보이는 만큼, 여긴 고산지대니까. 호수까지 와서, 어쩐
일인지 나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맘 속으로는 얼른 들어가서 수영하고 돌아가서
씻어야지 하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물이 차가워서? 그거야 천천히 들어가면 된다. 들어가 있다 보면
괜찮아진다. 그럼 수영복색깔이 부끄러워서? 그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훨씬 화려하고, 야한 수영복을
입은, 아니 거의 벗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몸매에자신이 없어서?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나한테 관심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물 속에 들어가 있으면 몸매따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무서웠던 거다. 역시 나는 물이 무서웠던 거다. 혼자서 들어가
헤엄치다가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맘 속 한구석에 그런 두려움이 남아 있었던 거다. 30분도 넘게
물가에서 망설이기만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훌렁훌렁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발
안닿는 곳까지 안들어가면 되지. 물은 차가웠지만 견딜만 했다. 머리는 내놓고수영을 하는데,
10미터도 못가서 숨이 차고 힘들어진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단순한 나의 운동부족인지.

10여분 물 속에서 혼자 놀다가 나와서 다시 옷을 입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빨래도 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수영을 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다. 30여분 망설이기만 하던 긑에,
벌떡 일어나 물 속으로 나를 이끈건 , 나도 이스쿨에서 수영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거기까지
가서수영도 안하고 뭐했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다. 뿌듯했다. 나는 이스쿨에서 수영을 한 거다.
이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나 이스쿨에서 수영하고왔어. 이스쿨에서 수영했니? 하는 질문엔
그럼, 당연하지, 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08/05/2008 08:5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