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lpon ata라는 곳에 왔다. 내 이번 키르기스탄행의 두가지 목표중에 하나다. 하나는 타직 비자와
파미르고원 퍼미션을 받는 거였고, 또 하나는 Issyk-kul 호수에 가는 거였다. 그래, 첫번째 목표는
비쉬켁에서 달성했고, 두번째 목표를위해, 이곳 촐판아타라는 마을에 온 거다.
Issyk-kul 호에 오려고 했던 건, 가이드북에서 본 사진 때문이었다. 파란 호수 앞으로는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호수 뒤로는 흰 눈을 인 산맥이 넘실넘실 이어지는, 하얀 눈산을 배경으로 한, 호수를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온거다. 그리고, 그 호수를 본 내 감상은, 멋있지만 역시 호수는 반디아미르 만한게
없다는 거다. 반디아미르 이후의 어떤 호수도, 내게 그만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젠 어떤 호수에도
기대하지 않는다. 마지막, 내게 남은 호수는 페루의 티티카카호다.
비쉬켁에는 6일간 머물렀다. 타직비자를 신청하고 받은 것 외에는 별다른 하는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같은 방의 어마어마한 소리로 코를 고는 일본남자 때문에 새벽부터 잠이 깨서는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차를 마시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는, 책을 읽거나, 가이드북 혹은 정보노트를 보며
앞으로 갈 나라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부족한 잠을 낮잠으로 보충하거나 잠시나가 메일
확인하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먹고, 같은 숙소 사람들이랑 수다를 떨고,
그게하루일과의 전부였다.
내가 도착했을 무렵엔 만원이었던 숙소는, 내가 들어온 이후로는 아무도 오지 않고, 차례로 하나씩
떠나가, 내가 떠날 무렵엔 거의 텅 비어 버렸다. 친하게 지냈던 건 일본사람 하나랑 캐나다 사람 하나.
일본 사람들이야 어딜가나 있고, 특히나 중앙아시아에서는 축복받은 일본인이라, 별로 특별하지
않았지만, 이 캐나다 친구는 좀 특별했다.
4년동안 중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는 것 부터가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한자를 더 많이 아는
백인이란 상상하기 힘들지 않니.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백인일거다. 영어 울렁증에,
깊은 대화가 시작될 듯하면 도망치는게 나니까.
이 친구의 첫인상은 동전이다. 자기는 자기가 다녀온 나라의 동전을 모으는게 취미라며 '이것봐라
니들 이거 half som 본적 있니?' 라며 우리에게 보여 주다가는 그만 그걸 바닥에 떨어뜨린거다.
침대 밑을 이리저리 뒤지다가는 제기랄! 어떡하지, 잃어버렸네, 내 유일한 취미인데, 라며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그 친구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수퍼에서 1/2솜 얻어다가
선물로 줬다.
그리고 이 친구랑은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며 책이며, 여행에 관한 이야기며, 부시에 관한
이야기까지. 영어로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하다니. 마지막 날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이민에 대한
생각 해 본 적 없니? 하고 묻길래, 다른 나라에서 살 수는 있지만 난 한국인으로 살고 싶다고
대답해줬다. 그래, 이렇게 외국을 떠돌며 살아가는 나이지만, 내 자신이 한국사람임을 잊은적 없고,
다른 국적을 가지길 바래본 적 없다. 세상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나는한국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친구가 뜬금없이 그런걸 물어본건, 여기가 중앙아시아이기 때문일거다. 스탈린 시대에, 많은
독일, 한국 사람들이 이주 당해 살고 있는 곳. 그러니까 독일계 캐나다인인 그 친구가 한국사람인
내게 그런 질문을 했겠지.
08/05/2008 08:2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