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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음주운전 차를 타고 하록까지

길은, 해발고도 4000미터의 산 속을 달린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게 편편했다. 파미르 하이웨이는
그렇게 힘든 길도 아니고, 포장도 비교적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전부터 듣고 있엇지만, 승용차에
편하게 앉아서 가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편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를 왜 세상의 지붕이라
부르는지 깨달았다.

단순히 높기만 해서 지붕이라 부른다면, 여기보다 더 높은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히말라야가 있는데,
왜 여기가 지붕일까. 여긴 편편한 거다. 높고 편편한 고원인 거다. 이렇게 높은 산 속에, 이런 평지가
넓게 이어지니까, 바로 여기가 세상의 지붕인 거다.

이렇게 평탄한 길이라면 나도 자전거로 넘을 수 있겠다 싶어, 조카가 조금만 더 크면 데리고 같이
자전거로 넘어, 조카를 최연소 파미르고원 자전거 횡단자로 만들어 볼까, 지프를 대절해서 엄마를
데리고 올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퉁불퉁해진 길을 달리던 차가 멈추어 선다.

뭔일인가 했더니, 내가 앉은 쪽 타이어가 완전히 펑크가 나서 쭈그러져 있다. 마구잡이로 달리더라니.
선김에 사진도 찍고, 타이어 가는 것도 도와주고, 잠시 후 차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려갔다.

4000미터 안팎의 패스를 두개나 넘었지만, 산을 오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은, 그 두개의
산 사이의 공간이 마찬가지로 4000미터 가까이 되는 높은 지대였기 때문이리라. 두번째 패스를 지나
차가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가자, 고도가 많이 낮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마을들이 전부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거다. 오쉬를 떠나 무르갑을 거쳐 파미르고원을 지나오면서는 나무라곤
없었거든.

그 녹음이 푸르른 마을들을 보면서, 훈자가, 파키스탄의 훈자가 왜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었다. 훈자는
각종 나무들이 많아 계곡을 뒤덮고 있으면서 때론 꽃으로, 때론 푸른 잎사귀로, 또 때로는 단풍으로,
그 계곡을 장식하거든. 역시 민둥산보다는 나무가 많은 산이 더 다양하고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는것
같다.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며 경치감상을 하는데, 차는 다시 어딘가에 멈추어 섰다. 식당 겸 호텔인
모양이었다. 핫 워터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온천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뜨거운 물로 씻고 싶으면
씻으라길래 필요없다고 했다. 앉아 있으려니 또 빵이랑 생선통조림이 나오길래 잠시 요기하고
가려나보다 했더니, 웬걸 보드카가 나온다.

어이가 없었다. 운전하다 휴게소에 들러 보드카 마시고 또 운전하고. 출발전의 술냄새도, 출발전에
한 잔 한 건지도 모른다. 뭐냐? 했더니, 당연한 듯, 보드카 마시는 거야, 한다. 너 운전해야 하잖아,
했더니, 추우니까 한잔 마시고 가는 거란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원래 그 만큼의 계획이었는지, 내 눈치를 본 건지, 보드카는 두 잔으로 끝났다. 제법 큰 잔으로. 여기
사람들은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인 모양이었다. 그 집 앞에, 승용차며, 트럭이며 잔뜩 서서 기사들이
각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 보면 말야.

술마신 기사의 차를 탄 기억은 또 있다. 네팔에서 국경을 넘어 인도 다질링으로 가던 날, 정말이지
꼬불꼬불한 산길, 그것도 군데군데 산이 무너져 내려 흙으로 도로가 막혀 있던 길을 밤에 올라가며,
티베탄이던 기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스키의 뚜껑을 따고는 마시기 시작하는 거다. 첨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운전하면서 계속 마시더니 거의 반치나 마신다. 아무리 말려도 노 프라블럼이라며 듣지
않고, 결국 중간에 내려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중간에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시 차가 출발하고 계곡 따라 하록까지
가는 내내, 불안감에 떨며, 손잡이에 매달린채, 조금 속도가 빨라질라 치면, '속도를 줄이란 말야,
이 자식!' 하고 속으로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가다, 안경을 벗으란다. 왜? 했더니, 하여간 빨리 벗으란다. 안경을 벗고, 주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달리려니 모든 것은 더 불안했다. 잠시후 차는 검문소를 지나가게 되었고, 나는여권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통과가 되었다. 안경만 쓰지 않으면, 나는 외국인인지 현지인인지 구분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잠시후, 기사가 하록! 하록! 하고 외쳤다. 낮술 먹은 음주운전 기사 차를 타고, 계곡길을 달려 하록까지,
나는 무사히 도착한 거다. 나는 한숨을 내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