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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꿈같던 하루가 끝나다

택시 기사에게 터키말로, 6번 트램 가는 길로만 가자고 했다.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가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으니까 그렇게 가자고했다. 아느냐니까 안단다. 안다더니 가면서
계속 사람들에게 묻는 걸 보니 불안하기도 했다.

계속 여기다 저기다 하면서 헤매길래, 트램 6번 길로만 가자고! 소리 질렀더니 자기가 택시기산데
트램길을 어떻게 아느냔다. 안그래도 속타 죽겠는데 사람을 열받게 하는 거지. 니가 안다고 했잖아!
하면서 또 소리 질렀다. 나, 참, 못됐지. 그러니까 주소를 대란다. 없다고했잖아! 또 소리를 질렀다.
기사도 성질을 낸다.

기사는 앞에서 욕을 해대고, 나는 뒤에 앉아서 한국말로 욕을 해댔다. 그렇게 한시간쯤 뱅글뱅글
돌았나, 갑자기 기사가 파하하하 하면서 웃는다. 나도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제 둘이 친해졌다.
이제 우리의 관계는 기사와 손님이 아니라, 오늘밤 어느 호텔을 찾아야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지였다.

혹시나 싶어 영어로 된 주소를 보여주니 역시나 모른단다. 또 계속 뱅글뱅글 돌다가는, 앞에 있는
5성호텔을 가리키며 혹시 저거 아니냔다. 저렇게 큰 호텔 아니란 말이야 했는데, 그래도 가 보잔다.
문지기가 나왔다. 혹시나싶어 너 영어 할 줄 아느냐니까 조금 한단다. 이주소 알겠느냐고 보여주니,
리셉션 가서 물어보란다. 벨보이가 보이길래, 다시 물어 보니, 자기가 리셉션 가서 물어보고 온다.

구세주를 만난 거다. 그리셉션 직원이 영문 주소를 해석해준거다. 그제서야 기사는 자기가 잘 아는
곳이라고했다. 이젠 둘 다신이났다. 이젠 둘이 싸우는게 아니라 대화를 한다. 나이도 물어보고,
결혼은 했니, 애는 있니, 이야기도 했다. 40대 중반은 되어 보였는데 나보다 두살 많다는 이야기엔 좀
놀랐지만. 주소를 찾아가며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맞기를.

그냥 아파트 하나를도미토리 방 두개로 운영하고 있는 집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사람이 안나온다.
다시 눌렀다. 한참 있다가 남자가 문을 열어준다. 일본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여기가
그 게스트하우스 맞냐니까 맞단다. 정말 기뻤다. 나만큼이나 택시기사도 기뻐했다.

토요일밤, 술취한 사람들 몇번 날라주고 돈 벌었을 시간에 나랑 같이 꼬박 두시간을 헤매다녀준
아저씨가 고마웠지만, 내 수중의 돈은 만원 정도였다. 물론 정상적으로 왔으면 삼사천원에 왔을
거리지만, 그럴 순 없었다. 끝까지 나 안버리고, 여기까지 데려다 준게 고마워서 있는 돈 다 꺼내주고,
이게 다라고, 고맙다고 건넸다. 못된 기사 같으면 더 내 놓으라고 난리쳤겠지만, 알았다고 고맙게
받아줬다. 못된 기사 같으면 벌써 어딘가에 내려놓고 가 버리지 끝까지 오지도 않았을테지만 말이야.

문을 열어준 남자한테 자리를 안내받고, 물 좀 주세요. 나 지금 엄청 목마르거든요, 했더니, 자기꺼라며
마시라고 환타를 준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자였다.
이스라엘사람이 왜 일본인 숙소에 와 있는가 싶었더니, 새로 나온 가이드북 개정판에 소개가 되어
있단다. 미안하다고, 난 니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사과를 하고, 좀 더 이야기를
하다가는, 옷도 못갈아입고, 침대에 고꾸라져서 잠이 들었다. 정말 꿈만 같던 하루가 지나갔다.

북경에서 비쉬켁까지, 나는 일주일만에 온거다. 거의 대륙횡단이다.

 

08/04/2008 07:31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