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르게이사

지부티로 향한 첫걸음 그러건 말건 우리는 일단 맥주부터 한잔씩 마셨다. 에티오피아로 넘어 와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싼 맥주가 넘친다는 것, 머리부터 발 끝까지 꽁꽁 싸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지. 이미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각이었지만, 맥주부터 마신 우리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가방을 메고,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자니 언놈이 따라와 호텔을 찾아준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질 나쁘기로 유명한 하라르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착한 아이를 만난 거였다. 그 아이와 함께 맥주 한잔씩을 더 마시고 우리는 씻지도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이 들었다. 전날까지는 하르게이사의 멋진 호텔에서 우아하게 잤는데, 이제부터는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여인숙보다 못한 수준의 방에 .. 더보기
천국, 소말리랜드를 떠나 전쟁터, 에티오피아로 다시 아디스 아바바로 돌아왔다. 또다시 전쟁터 같은 에티오피아로 돌아왔다. 소말리랜드에서 에티오피아로 국경을 넘고 48시간이 채 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는지. 한달이 넘게 수현이랑 같이 지내면서 세뇌를 당한 탓도 조금은 있겠지만, 나도 이 나라 에티오피아에는 정이 많이 떨어졌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느라 목이 다 쉴 지경이고(목소리 크면 장땡이니까) 여행 중 처음으로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다. 징그러운 놈들. 얼른 비자 받고, 이 나라를 떠야겠다.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하르게이사를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아침 먹고, 호텔 직원아이들이랑 사진도 찍고, 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시장에 있던,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장사하던 수많은 환전상들의 사진도 찍고, 아쉬워서 밍기적거리다보니, 그만.. 더보기
높은 사람, 고마우신 분 그렇게 우연이라는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 중에, 또 한 사람 큰 인물이 있었다. 수현이가 비자 신청하러 갔다가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만난 소말리인 아줌마다. 보통 아줌마였다면 중요한 인물이 못되었겠지. 이 아줌마는 소말리랜드 출신이지만 인도사람과 결혼해서 영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은 조국인 소말리랜드를 돕기 위해 이곳에서 대통령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남아공에 대사로도 근무했었고, 남편은 유엔에서 꽤나 높은 직책을 맡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우연히 만난 수현이한테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집에 초대를 받아 갈 때에 나도 같이 가게 되었다. 여자애들이 오지라고 말하는 나라들을 혼자서 여행하는게 아주 신기해 보였나봐. 우리가 이제껏 지나온 이야기들을 아주 흥미있게 듣고, .. 더보기
하르게이사에서 만난 사람들 그렇게 심심하던 우리에게 생기는 반가운 일이라곤, 사람들을 만나는 것 밖에 없었다. 길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그러듯, 우리도 외국인을 만나면 마냥 신기했다. 호텔안에서 만난 외국인들이 많이 반가웠지만, 우리를 상대해주는 사람들은 스위스 할아버지 남매 뿐이었다. 얼마나 여행 다녔니? 5년 쯤 됐어요. 오호, 좋겠다, 나도 젊었을 땐 그렇게 다녔었지.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그래, 내가 35년 쯤 전에 한국에 갔었지. 이런 대화들을 나누곤 했었지. 35년 전에 한국은 어땠을까. 지금 내가 이 곳 소말리랜드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심하게 외국인을 신기해했을텐데, 얼마나 귀찮고 힘드셨을까 싶기도 했고. 그당시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여쭈어봤다. 음..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정말 맛있었어. 기.. 더보기
하르게이사의 심심한 날들 하르게이사로 돌아오면서는, 가능한 짧은 시일 내에 여길 떠나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뭐, 볼 것도 없는 도시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고, 앞으로의 일정이 그렇게 헐렁하지만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어쩌다보니라는 수식어가 붙겠지만, 우리는 11일째 하르게이사에서 지내고 있다. 토요일에 도착해서 하루 쉬고 월요일에 수현이의 에티오피아 비자를 받은 다음에는 곧장 갔어야 했지만, 그러고도 벌써 일주일이 더 지난 거다. 비자 연장까지 했으니. 하르게이사에서는 역시 할 일이 없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꾸역꾸역 배부를 때까지 먹고, (그러고보면 터키에서 그렇게나 치를 떨던 빵을 여기선 엄청나게 먹어대고 있다) 오후가 되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친친 싸매고, 그날의 유일한 외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