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출국절차
드디어 수단을 떠나왔다. 아주 복잡한 절차 끝에, 드디어 여권에 출국 스탬프를 찍고, 배를 타고, 이집트 영역으로 들어왔다. 기차는 처음 이야기한 대로 27시간만에,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한 마을 와디할파에 도착했고, 그때 나는, 추위에, 먼지에, 꼴이 꼴이 아니었다. 사막속의 마을 와디할파는, 온통 모래먼지의 마을이었다. 실컷 찍지 못한 사진을 찍어두려고, 마을들을 돌아다니다가, 이 마을엔 모래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도 나오지 않는, 바깥과 다를바 없는 모래바닥의 방을 가진 호텔에서, 두 양동이의 물을 퍼다놓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힌다. 한국이라는 문명세계에서 살고 있는 너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그런 공간을 우리는 호텔이라 부르고, 거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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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단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는 건,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른 새벽, 아디스를 출발한지 꼬박 나흘만에, 수단에서의 1차적 목적지였던 포트수단에 도착하기는 했다. 완전 녹초가 되어 펄펄 끓는 열을 가지고 기침까지 하며, 입술은 부르터서, 또다시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선물, 빈대와 이들이 남긴 상처를 온몸에 잔뜩 지닌채, 그래도 12월 31일이 되기 전에 포트수단에 도착했으니, 목표대로 레드씨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뿌듯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다 무너져 내렸다. 여기는 포트 수단, 말 그대로 항구일 뿐 바다가 아니다. 방파제 안쪽의 물웅덩이 밖에 보이지 않고, 아침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 일출의 장관 같은 건 없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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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나의 2007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땠나. 아침 일찍 일어나, 죽도록 싫어하는 병원에 가서, 병원에 가면 우울해지거든. CT촬영기계에 누워 추워서, 정말 추워서 덜덜덜 떨다가 얼음장 같은 몸을 일으켜 결국 피를 보고, 나름 사치한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 가서 아무 이상 없다는, 정말 운 좋다는 결과를 듣고 호텔에 돌아와 피 묻은 옷을 빨아 널고,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편지를 쓰고 있다. 뭐, 별로 나쁘진 않다. 그래도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니까.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이제 안심하고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잠바를 빨다 보니, 주머니에서 뭔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만져졌다. 힘들게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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