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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프리카에서 보낸 편지

복잡한 출국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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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단을 떠나왔다. 아주 복잡한 절차 끝에, 드디어 여권에 출국 스탬프를 찍고, 배를 타고,
이집트 영역으로 들어왔다.

기차는 처음 이야기한 대로 27시간만에, 이집트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한 마을 와디할파에 도착했고,
그때 나는, 추위에, 먼지에, 꼴이 꼴이 아니었다. 사막속의 마을 와디할파는, 온통 모래먼지의
마을이었다. 실컷 찍지 못한 사진을 찍어두려고, 마을들을 돌아다니다가, 이 마을엔 모래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도 나오지 않는, 바깥과 다를바 없는 모래바닥의 방을 가진 호텔에서, 두 양동이의 물을 퍼다놓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힌다. 한국이라는 문명세계에서 살고 있는 너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그런 공간을 우리는 호텔이라 부르고, 거기서 잠도 자고, 물도 나오지 않는
흙먼지 바닥에 최소한의 물을 떠다놓고 샤워도 한다. 그렇게 했다.

아디스를 떠나 혼자가 된 이후로 외국인 여행자라곤 통 보이지 않아 결국 이집트까지는 혼자 갈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착한 현지인들은 많이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아침에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출국 절차를 밟으러 갔다가, 영국 아저씨를 만났다.

둘이서 서로 도와가며, 완전 시장통 같은 아수라장의 오피스에서 이곳저곳 도장도 받고, 돈도 내고
(나가는 데도 돈 내라더라) 한시간 반쯤 밀고 밀치고 했지만, 여권에 스탬프는 찍지 못했다. 영국
아저씨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사막길을 달려, 호숫가 선착장으로 가서 또 한참 기다리고 이곳저곳
왔다갔다, 이 종이 저 종이 줬다가 받았다가 한 끝에 겨우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고, 드디어 배에
탄 것은 세시 정도. 아침 여덟시부터 왔다갔다 하다가 일곱시간만에 스탬프 받고 배에 탄거지.

영국 아저씨는 오토바이 때문에 더 복잡했다. 돈도 훨씬 많이 내야 했고. 아저씨가, 절차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아니? 이렇게 묻더라. 왜? 하고되물으니,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야 라고. 일주일에 한번, 배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일이 없는 이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일을 주기 위해서 일을 복잡하게
해 놓은 거라고.

돈 받는 사람, 돈 받는 영수증 써주는 사람, 돈 낼 순서 영수증 뒤에 적어주는 사람, 마이크로 그
순서 불러주는 사람, 도장 찍는 사람, 짐 검사 하는 사람, 짐검사 했다는 확인 스티커 붙여주는 사람,
그 사람들 밥 해주는 사람. 저런 것도 따로 사람이 필요할까 싶은 일에도 그들은 사람을 두고 있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대합실에서 빵에다 치즈도 발라 먹고, 차도 마시고 하며, 한참을 기다린 후에 배에 탄 후에도 배는
2시간 동안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더니, 해가 지기 전에 와디할파를 떠나 Lake Nasser, 인공호수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호수를 통해 아스완으로 가고 있다.


수단. 12일 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기억에는 꽤나 많이 남을 것 같다. 사람은 정말 좋다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들은 참 많이 만났지만, 다른 많은 것들 때문에 참 많이 지치기도했다. 그래도
수단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한국의 위상이 아주 높았던 거다. 현대, 기아, 대우. 많은 한국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한국의 상호나 상표가 아직 그대로 붙어 있는 중고 승합차나 버스들도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심심해서 헤아려 봤다. 절반 정도는 한국차인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고, 그렇다고 하면 한국 좋다, 한국차 좋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위상이 가장 높은 나라가 아닐까.


그렇지만 사실, 아프리카는 벌써 끝난 듯한 느낌도 든다. 이집트도 그렇지만 수단부터는,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아랍이라는 느낌이 강하거든. 강한 이슬람의 종교색도 그렇고, 사람들도
완벽한 흑인보다는 아랍계의 사람들이나 혼혈이 많이 보이니까.

힘들어서, 지치고 피곤해서, 빨리 이종단을 끝냈으면, 어서 카이로에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실제로 수단을 떠나 카이로에 점점 가까워오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카이로에
가면, 아프리카 종단을 끝내고, 카이로에 도착하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