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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5년만의 체스, 10년만의 볼링

타쉬켄트를 떠나 사마르칸드로 갈 땐 카즈와 함께였다. 사마르칸드엔 왜 또 갔느냐고?
사실 사마르칸드엘 또 간게 아니라, 거기서 묵었던 호텔에 다시 간거였다. 아주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중간에 정원이 있어 기분좋은 호텔이거든. 타쉬켄트를 떠나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
도착하기까지 미친듯이 달려야하는데,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지치는 듯하여, 하루 쉬었다
가기로 한거다.

여전히 많은 일본아이들이 몰려있었고, 그 중 한 아이와 나는 체스를 뒀다. 5년만의 체스였다.
다른 아이와 함께 두고 있는걸 보고 있으려니, 다시 옛날 생각이 났고, 두고 싶지 않았지만, 내
앞에다 체스판을 놓고는 말을 다 늘어놓은 뒤, 먼저 두세요, 하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5년만이라 생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이기긴 했지만, 두는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체스처럼 머리를 많이 쓰야하는 게임은 그래서 싫다.

사마르칸드의 호텔에서 편안한 하루를 보낸 후, 부하라로 갈 때, 우리는 다섯이 되었다. 이렇게
떼로 다니는 건 참으로 오랜만의, 어쩜 처음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섯이서 다마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표를 사서는 다시 돌아와, 가방을 짊어지고 다시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기차는 싸고 쾌적했다. 역무원이 당연한듯 500원 정도의 돈을 사기치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부하라에 도착해서는 같이 방을 잡고, 우르르 몰려 다니며 같이 관광을 했다. 부하라는 물가가
비쌌다. 우즈벡의 다른 지역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비싼 값들을 상점에서도, 식당에서도 불렀다.
쇼핑도 하기 싫고, 밥도 먹기 싫어질 정도였다. 저녁에 다같이 맥주를 마신 우리는 산책을 나섰다.

낮에 보니까 여기 볼링장이 있더라는 한 아이의 말을 따라, 부하라에서 볼링이라, 기억에 남을 것
같군, 했던거지. 나도 10년만의 볼링을 살짝 기대하며 따라 나섰다. 이런 유적뿐인 마을에 정말
볼링장이 있을까 의심스럽긴 했찌만. 다섯이서 걸어가 보니, 거긴 볼링장이 아니라 소방서였다.
어떻게 소방서를 볼링장으로 착각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간판에 볼링이라는 말 비슷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무슨무슨 관공서라는 뜻이겠지.


그렇게 볼링은 끝이 나고, 우리는 다시 걸어 낮에 본 거대한 모스크로 갔다. 부하라에서 가장 높은,
한때 사형수들을 떨어뜨리는 처형대로도 쓰였다는 47미터짜리 미나렛을 가진 모스크다. 우즈백은
전기가 부족한지 사마르칸드에서도, 부하라에서도 유명한 유적들에도 라이트업되는 경우가 거의
안보이고, 희미하게 한두개 등이 켜져 있을 뿐이다.

이 모스크도 마찬가지로, 어두웠지만, 그게 오히려 신비한 느낌을 내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돔이
보이고, 관광시간은 끝나고,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간 모스크에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도 안에 들어갈 수 없는가 밖에서 지키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내일 밝을 때 와서 표를
사서 들어가란다. 아니, 지금, 이 밤의 모스크를 보고 싶은거라고, 5분만,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했더니 맘좋은 아저씨가 들어오란다.

어슴푸레한 불이 밝혀진 모스크 마당은 신비스러웠다. 가운데 심겨진 나무가 아라비안나이트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밖의 시끄러운 장사치들과는 달리, 모스크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소리가 가끔 들릴락말락 낮은 소리로 들려올 뿐이었다.

더 오래, 아라비안나이트를 즐기고 싶었지만, 남의 예배당에 이교도인 우리가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일이라, 아이들을 재촉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 밤의 모스크가 내게, 우리에게 부하라를, 짜증나는
관광지에서 신비하고 성스러운 유적지로 가치를 상승시켰다.

실크로드의 중심에 있던 마을, 징기스칸에 무너졌던 마을, 부하라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를 못해서,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는 못해주겠다. 영어가이드북을
들고 다닌 비극적인 결과다. 영어로 역사를 읽으면 해석하기에 급급해서 기억에 남는게 아무것도
없다.

다음날 카즈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국경을 넘었고, 남은 넷은 하루를 더 잔 후 그 다음날 뿔뿔이
흩어져 제갈길을 갔다. 나는 그 중 한 아이와 함께 히바로 갔다. 여기서부터 우즈베키스탄의 물가가
진짜로 비싸지기 시작했다.

 

09/09/2008 06:3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