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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트라브존 일기 7, 8 - 리제 4월 19일, 4.19다. 그래, 이런 것들도 잊고 산지 이미 오래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마음까지도 다 가지고 나와서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샌가 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딱 두 캔만, 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맥주가 끝나버리자, 어중간하게 마셔서 그런지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졌고, 결국 벌떡 일어나서 사러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어제 둘이서 마신 맥주가 열 캔. 미쳤지. 잘도 마셨지. 그래도 어젯밤엔 재밌었다. 일주일이나 같이 지내면서도 필요한 말 외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과,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내 이야기도 많이 했고, 저 친구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오랜만에 웃기도 하고, 그렇게 맥주가 다..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6 - 트라브존 여유 오늘은 일부러 빈둥빈둥 하루를 보냈다. 어제 다녀온 수멜라 수도원이 상당히 만족스럽기도 했고, 내일 밤이면 트라브존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트라브존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씻고, 빨래하고, 어제의 일기를 쓰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후에 잠깐 바다에 다녀오리라, 그게 다였다. 귀찮아서 안가겠다는 친구를 남겨두고 혼자 바다로 갔다. 삼십분을 조금 넘게 한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이름 때문인지 검게 보이는 흑해를 바라보며, 어제보다 훨씬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와 함께 넘실거리는 기억들을 바라보며. 추웠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좋지는 않았다. 물론 술탄 아흐멧의 그것 같지는 않았지만. 한시간만에 ..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4 - 보즈테페 나흘째, 아직도 수멜라에는 못갔다. 수멜라는 커녕, 열두시가 될 때까지도 나는 침대에 있었다. 아침은 없었다. 눈뜬 내게 다가온 것은 곧장 오후였다. 지하 아닌 곳이라 늘 그랬지만, 햇볕은 눈부셨고, 시계는 열두시를 훌쩍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술김에 한 어제의 약속 때문에 그 터키인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차려지지 않는 정신을 차려야했다. 다섯이서 차를 마시고, 우리 넷은 바닷가로 갔다. 첫날 갔던 바닷가. 역시 바다는 좋다. 몇 분 앉아있지도 않았는데, 언제 갈거예요? 묻는 우리의 말없는 청춘. 왜? 벌써 가고 싶어요? 이만하면 볼 만큼 봤잖아요. 일요일이라 우리말고도 잔뜩 나와 있던 터키 아이들이, 좀 더 말 걸기 편하다고 생각한 유일한 남자한테 말을 너무 많이 시킨 것이다. 안그래도 말하..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2 - 아야 소피아 나름대로 아침, 눈뜬 시각이 10반. 이번 트라브존행의 가장 큰 목적인 수멜라 수도원 행 버스는 이미 떠난 후. 내일 가지 뭐 시간도 많은데, 짧은 오전시간을 빈둥빈둥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터키음식에 상당히 질려있는 상태라 맥도날드로 점심을 해결한 후 돌무쉬를 타고 아야 소피아로 갔다.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아담한 교회였다. 도시의 외곽에, 넓은 뜰을 가지고 있는 편안한 교회였다. 의외로 프레스코화도 꽤 많이 남아 있었고. 뜰에 잔뜩 피어 있는 풀꽃들을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그마한 유적지인 아야 소피아 만으로는 오늘 하루 일정으로 좀 부족한 듯하여, 오르타 히사르도 보기로 하고 거기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 나타난 것이 트라브존스포르 메인 구장. 그리고 트라브존 스포르 상품관.. 더보기
트라브존 일기 1 - 흑해다! 어제 새벽 2시까지 맥주를 마시고 3시반 픽업을 타고 공항으로 가서, 또다시 두시간 반이나 기다린 다음에야 6시 40분 트라브존행 오누르항공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졸음과 싸우면서 피로와 싸우면서, 두 번 다시 이런 짓 하지 않으리 맹세 했다. 버스표를 구할 수 없었고, 가격차이 얼마나지 않으니까 비행기를 타라는 주위의 권유 때문에 그렇게 하긴 했지만,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좀 더 편할 줄 알았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어제 하루는 완전히 비몽사몽이었다. 도착해서 차 마시고, 세수만 한 상태에서 잠 들었다 깼다를 오후 다섯시까지 반복했다. 그래도, 그렇게 피곤했지만, 트라브존에 도착해서 공항 활주로 옆을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바다다, 흑해다, 난 역시 바다가 좋다. 안떠지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