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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케

선착장 그래도 바이아 술라노는 이제껏 거쳐온 하케나 후라도와 같은 마을들에 비하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도 있고, 비행장도 있고, 인터넷 까페도 있는 꽤 큰 마을이다. 하지만 그런 마을이라도 선착장은 이 모양이다. 아무데나 댈 수 있는 곳에 배를 갖다 대면 그만이지 특별하게 만들어져 있는 시설들은 없다. 이곳 역시 우리를 처음 맞이한 사람들은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짐을 형식적으로 검사하고 마을로 들여보내 주었다. 바이아술라노에 도착하기까지 사람들이 잔뜩 겁을 주었던 것과 같은 마약상들이나, 총격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더보기
생애 첫 남미 땅, 후라도 콜롬비아의 후라도. 물론 이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고, 이런 마을에 갈 계획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여기는 태평양 연안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배가 다른 마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고, 마을 입구에서는 군인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중미의 파나마시티를 떠나 남미로, 콜롬비아를 향해, 열여덟시간 화물선으로 간 하케에서 다시 스피드보트(란차)를 타고 세시간 더 내려간 곳이 여기, 후라도 이다. 거센 파도에 바닷물을 옴팡 뒤집어 쓰고, 비까지 만나 쫄딱 젖어 안경도 흐려지고, 잡고 있던 나무널빤지를 놓치면 빠져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묶지도 못할만큼 잔뜩 긴장해서는 심각하게 심장마비를 걱정하며 달려간 작은 마을. 정말이지 작은 마을이라 아직은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더보기
롤러코스트 같은 배를 타고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우리에겐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출국 스탬프. 하케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사람과, 받을 수 있다는 사람이 섞여 있었으므로,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서 스탬프를 받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그 배를 타고 파나마시티로 돌아가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쉽게, 마을에 있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서 받을 수 있었다. 더운 나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특히나 시골마을에서 더욱 더 그렇듯, 하케의 이미그레이션 직원들도 느렸다.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이 길었고, 무엇하나 부드럽게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를 무렵, 우리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벽에 붙어 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인내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파나마시.. 더보기
18시간만에 밟은 땅 열두시가 지나자 주방아저씨는 또 밥을 줬다. 이번에는 꽤나 제대로 된 식사였다. 밥에 닭에 콩까지. 샐러드가 빠진 정식 같은 훌륭한 식사였다. 나는 또 맛있게 받아 먹었지만, 스테파니는 누워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스테파니의 본격적인 배멀미가 시작되었다. 옆에 누워있던 나에게 비닐봉지를 달라더니, 누운채로 스테파니는 토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토하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새 비닐봉지를 건네고 토한 비닐은 갖다 버렸다. 그냥 바다에 휙 던져버린 거다. 잠시 후 오렌지며 오이를 다 토해낸 스테파니는 아무것도 먹지 말았어야 하는 거라며 후회했다. 스테파니는 짜증을 심하게 냈고, 토하느라 기력이 다한 듯, 자기 몸이 어떻게 된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 계속 토하는 사람 옆에 있으려니, 멀쩡하.. 더보기
배에서 맞는 아침 콜롬비아. 내 생애 최초로, 내 여행 중 처음으로, 남미 대륙에 발을 디뎠다. 물론 편하게 온 건 아니다. 파나마에서 콜롬비아로, 중미의 끝에서 남미의 처음으로 넘어오기까지는 또 한번의 큰 모험을 해야만 했다. 파나마시티의 구시가, 카스코 비에호에서 오후에 출발할거라던 배는, 우리가 아홉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밤 열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화물이 다 실렸고, 드디어 출발했다. 화물선이라, 짐들 사이에 끼어서 가야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배 안에는 나름 침대가 있었다. 3단이 세칸, 그 중 하나는 못쓰게 되어 있고, 하나는 주방아저씨 전용이었으므로, 7개의 침대를 사용할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 침대들은 여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졌다. 나와 스테파니에게도 하나씩 침대가 주어졌지만, 나는 내 침대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