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파나마

카스코 비에호에서 바라본 파나마시티 멀리 바라다 보이는 파나마시티 중심가. 저 멀리 보이는 다리는 아메리카 브릿지. 아메리카 대륙의 다리란다. 그리고 바다엔 많은 배들이 늘어서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카스코 비에호에 있는 항구다. 파나마를 떠나는 배를 화인하러 잠시 들렀다. 스테파니는, 저 노란 배가 우리가 타고 갈 화물선이라고 알려 주었다. 더보기
카르타헤나 관광 카르타헤나는 더웠다. 그러다보니 배낭여행자들이 묵어가는 싼 숙소에도 모두 에어컨이 딸려 있었고, 에어컨 딸린 방에서 나와 햇빛이 작렬하는 거리로 나서기를 결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 더위가 참 오랜만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콜롬비아로 들어오기 전, 메데진에 도착하기 전까진 나는 주욱 뜨거운 나라들을 지나왔던 거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 비교적 선선했던 메데진에서 2주가 넘게 지내다보니, 그 더위가 생소하게 느껴졌던 거다. 사람은 참, 편한 것에만 적응을 빨리 하고, 힘든 것엔 적응하기도 어렵고 빨리 잊어버리는 듯하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방 안에서만 누워 뒹굴다 생각해보니, 이러다간 몇일을 머물러도 카르타헤나에선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우리보다 하루 늦.. 더보기
생애 첫 남미 땅, 후라도 콜롬비아의 후라도. 물론 이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고, 이런 마을에 갈 계획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여기는 태평양 연안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배가 다른 마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고, 마을 입구에서는 군인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중미의 파나마시티를 떠나 남미로, 콜롬비아를 향해, 열여덟시간 화물선으로 간 하케에서 다시 스피드보트(란차)를 타고 세시간 더 내려간 곳이 여기, 후라도 이다. 거센 파도에 바닷물을 옴팡 뒤집어 쓰고, 비까지 만나 쫄딱 젖어 안경도 흐려지고, 잡고 있던 나무널빤지를 놓치면 빠져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묶지도 못할만큼 잔뜩 긴장해서는 심각하게 심장마비를 걱정하며 달려간 작은 마을. 정말이지 작은 마을이라 아직은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더보기
롤러코스트 같은 배를 타고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우리에겐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출국 스탬프. 하케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사람과, 받을 수 있다는 사람이 섞여 있었으므로,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서 스탬프를 받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그 배를 타고 파나마시티로 돌아가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쉽게, 마을에 있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서 받을 수 있었다. 더운 나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특히나 시골마을에서 더욱 더 그렇듯, 하케의 이미그레이션 직원들도 느렸다.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이 길었고, 무엇하나 부드럽게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를 무렵, 우리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벽에 붙어 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인내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파나마시.. 더보기
18시간만에 밟은 땅 열두시가 지나자 주방아저씨는 또 밥을 줬다. 이번에는 꽤나 제대로 된 식사였다. 밥에 닭에 콩까지. 샐러드가 빠진 정식 같은 훌륭한 식사였다. 나는 또 맛있게 받아 먹었지만, 스테파니는 누워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스테파니의 본격적인 배멀미가 시작되었다. 옆에 누워있던 나에게 비닐봉지를 달라더니, 누운채로 스테파니는 토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토하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새 비닐봉지를 건네고 토한 비닐은 갖다 버렸다. 그냥 바다에 휙 던져버린 거다. 잠시 후 오렌지며 오이를 다 토해낸 스테파니는 아무것도 먹지 말았어야 하는 거라며 후회했다. 스테파니는 짜증을 심하게 냈고, 토하느라 기력이 다한 듯, 자기 몸이 어떻게 된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 계속 토하는 사람 옆에 있으려니, 멀쩡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