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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벨로

드디어 징카의 장터로 일어나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옷가지를 바깥 빨래줄에 널고, 찔찔 나오는 물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는, 친절한 일본인과 함께, 길 건너편으로 차를 마시러 갔다. 여덟시에서 아홉시 사이에 올거라는 버스가, 더 빨리 올 리는 없다고 확신하면서, 여유있게 차 마시고 동네구경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버스가 왔다는 거다. 허겁지겁 화장실도 다녀오고, 마른 옷은 가방에, 덜 마른 옷은 비닐에 대충 쑤셔 담고 부리나케 버스로 달려 갔다. 다행히 버스는 아침식사를 하는 듯, 제법 오래 머물렀다. 자리를 확보하고, 장거리를 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드디어 버스는 움직여 출발했고, 콘소에서 징카까지의 길은 험했다. 우기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서인지 군데군데 길은 끊어져, 버스는 사륜구동 지프인양 냇물을 건너가.. 더보기
최악의 날, 끝나다. 호텔주인은 좀 비싼 방을 팔아보려고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지만, 우리는 딱 잘라 말했지. 제일 싼 방. 카파도키아의 동굴방을 연상시키는 흙벽으로 된 방이었다. 방에 습기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며 우선은 옷을 갈아 입었다. 제발 침낭만은 젖지 않았기를 하고 바라며 하나씩, 가방 안의 물건들을 꺼냈는데, 제일 밑바닥에 들어있던 침낭만 조금 젖고 다른 것들은 비닐을 씌워 두어서인지 젖지 않고 남아 있었다. 속옷까지 홀라당 다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나니, 에티오피아의 이제껏 지나온 다른 지역과 비교하니 거기는 더운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른 옷을 입고, 마른 천을 목에 두르고는 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 같은 날, 절대로 인제라는 먹지 않을거야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제라는 에티오피아 모든 .. 더보기
이번 여행 최고의 고행길 한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다. 조금 불안한 마음에 가방에다가는 비닐을 씌웠다. 사람들은 짐칸에 실린 구호물자로 온 옷들이 젖을까봐 덮개를 준비했고, 몇몇은 아예 그 비닐 덮개 밑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러는데 빗방울이 갑자기 굵어졌다. 우선은 엎드렸다. 비를 피하려고. 하지만 비는 이미 들이붓는 비가 되어 엎드려서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사람들은 모두 비닐 속에 들어가 앉아 우리더러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쳤지만, 우리를 위한 자리는 충분치 않아 겨우 머리까지만 썼을 뿐이다. 그리고, 알지? 달리는 차 위에서는 비는 앞에서 뒤로 들이친다는 사실. 결국 우리가 바람막이 비막이의 역할을 한거지. 물을 잘 흡수하는 따뜻한 재질의 내 잠바는 스폰지처럼 빗물을 흡수해서는 .. 더보기
물시족을 만나러 징카로 에티오피아. 역시 이 나라는 소문대로다. 힘든 나라다. 나는 왜 이렇게 이 렇게 이 나라에서 겉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루 빨리, 아디스 아바바에 가고 싶은 생각 뿐이다. 그 유명한 마을의 그 유명한 부족들을 봤지만, 전혀 아무런 감흥도 없고, 유명한 만큼, 성가신 사람들만 많아진 이 마을에 정말이지 정이 안간다.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올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가, 의문스럽다. 고생길, 이제까지의 고생을 한번에 비웃을 수 있는 고생길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우습기만 할 뿐이지만. 아디스 아바바는 에티오피아의 한 중간에 있기 때문에, 아디스까지 가기 전에 남쪽에 있는 곳들엔 들렀다 가고 싶었다. 이 나라는 산도 많은 데다가, 버스도 완전 고물이라 고장도 잦고, 시간도 엄청 많이 걸리기 때문에 지도상에서.. 더보기
악몽 같던 첫날 유일한 일과였던 환전을 끝내고 약속시간까지 기다리며 편지를 쓸 생각이었지만, 찍어놓은 사진을 보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귤 몇개를 사들고는 약속 장소로 갔지. 길에서 만나 집으로 갔더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나름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컴퓨터로 음악도 틀어놓고, 그들은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웃겼다. 니들은 우리가 맨날 스파게티만 먹는줄 알겠지만, 아니야, 우리는 파스타를 더 자주 먹어. 우리가 보기엔 그놈이 그놈인데. 우리는 배추김치만 먹는게 아니라 깍두기도 먹어, 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말이 아닐까. 이탈리아 사람이 만들어 주는 오리지날 스파게티를 먹고, 사진도 찍고, 아프리카 게임도 배워서 실컷 놀다가 다음날의 이른 출발을 위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