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데진

콜롬비아의 마지막 밤, 산타 마르타 카르타헤나에서는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더 오래 있어봐야,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만 흘러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머무르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더 빨리 베네수엘라로 국경을 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주 수요일에 출발하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행 배를 타야하는 거였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나와 동행하게 된 젊은 부부는 물론, 내게도 계획에 없던 루트였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국가 이름을 외우게 된 이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부터 나는, 가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가가 비싸다는 정보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나라. 여길 혼자서 간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이 두 사람을 열심히 설득했다. 가자, 가자, 이런 나라 언제 갈 기회가 있겠어, .. 더보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고생 마지막으로 묻겠다며 버스에 탈 것인지 안탈 것인지 결정하라던 버스기사에게 노, 라고 답해주자 버스는 떠났고, 우리 차의 기사와, 어디서 나타났는지 동료 하나가 차에 타고서는 악담을 퍼부으며 고장났다던 차를 몰아,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신나게 달렸다. 아무래도 내 여행길이 유독 힘든 건, 내 탓이 아닌가 싶다. 그냥 시키는대로 옮겨 타고 갔으면, 바가지를 쓰건, 시간이 걸리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었을 텐데, 난 이번에도 굳이 힘든 길을 택한 거다. 나야 내 의지로 택한 거니 어쩔 수 없지만, 또 그정도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지만, 나 때문에 덩달아 길이 힘들어진 두 사람에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냥 갈 걸 그랬나. 삼십분 넘게 달린 차는 어느 마을 정비소 앞에 멈추어 섰고, 기사는 보란 듯, 차의.. 더보기
힘든 하루의 시작 콜롬비아의 버스는 중미의 버스요금에 비하면 많이 비쌌다. 버스는 깨끗하고, 에어컨, 화장실까지 갖추어진 편한 버스지만, 그렇다고 해도 비쌌다. 하지만 남미를 여행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콜롬비아는 그래도 싼 편이란다. 버스요금이 비싸긴 하지만, 깎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버스터미널의 창구에서 표를 사면 정해진 요금에서 절대로 깎아주지 않지만,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자리를 채우지 못한 버스기사나 삐끼들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흥정에 따라서는 반값까지 싼 요금에 태워준다는 거다. 하룻밤 이동에 7만원이라는 거금을 낼 수는 없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역시 창구에서는 씨도 안먹힌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버스 기사들도 깎아주려하지 않는 거다. 알고 보니, 그날 밤 카르타헤나로 가는 모든 .. 더보기
늪 같은 메데진을 떠나 다시 길 위로 그렇게 메데진에서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다. 2주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갈 길을 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편하다고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니까. 처음 남미를 계획했을 땐, 파나마시티에서 카르타헤나로 들어갈 작정이었으므로, 그대로 주욱 남하해서 메데진, 보고타를 거쳐 에콰도르를 통해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대륙을 일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카르타헤나가 아닌 서쪽 해안으로 입국해서 메데진까지 오게 되었고, 그래서 반대루트를 생각하게 되었다. 메데진에서 카르타헤나를 거쳐 베네수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기아나 3국과 브라질을 거쳐 아르헨티나로.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작정한거지. 첨엔 스테파니가 내가 가는 길을 당분간 동행할 거라고 생각했기.. 더보기
엘 뼤뇰 처음 몇일간은 스테파니와 나 외에는 여행자가 없었는데, 몇일 지나자 다른 여행자들이 왔다. 젊은 부부가 오고, 가족이 오고, 개별 여행자들이 왔다. 숙소가 더 많은 한국사람들로 넘쳐났다.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니, 좋았다. 귀찮아서 관광 다니기를 싫어하는데, 우르르 몰려갈 때, 따라갈 수 있으니. 그래서 메데진 근교의 최고 관광지, 엘 뻬뇰에 가는 데에 우리도 끼었다. 아이까지 아홉 명. 단체로 움직이니 난 그냥 따라만 가도 되어 편했다. 엘 뻬뇰은 높이 솟은 거대한 바위가 있고, 그 위로 66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보면, 그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호수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곳이다. 개인 소유지인 그 호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싸웠다는 할아버지의 동상이 입구에 서 있고, 바위산 벽면에 억지로 만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