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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차

선착장 그래도 바이아 술라노는 이제껏 거쳐온 하케나 후라도와 같은 마을들에 비하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도 있고, 비행장도 있고, 인터넷 까페도 있는 꽤 큰 마을이다. 하지만 그런 마을이라도 선착장은 이 모양이다. 아무데나 댈 수 있는 곳에 배를 갖다 대면 그만이지 특별하게 만들어져 있는 시설들은 없다. 이곳 역시 우리를 처음 맞이한 사람들은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짐을 형식적으로 검사하고 마을로 들여보내 주었다. 바이아술라노에 도착하기까지 사람들이 잔뜩 겁을 주었던 것과 같은 마약상들이나, 총격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운이 좋다. 더보기
또다른 마을로 작은 배에 열 명도 넘는 사람과 엄청난 짐을 싣고 우리배는 다시 달렸다. 잔잔한 강을 벗어나니 다시 망망대해. 다행히 이번엔 날씨도 좋고 바람도 자서 배는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시간 반쯤 달리고나니 물새들이 많이 보였고, 배는 바이아 술라노에 도착했다. 조금 더 문명세계에 가까워졌다. 더보기
란차 작은 스피드보트다. 모터보트다. 중미의 니카라구아에선 팡가라고 부르더니 콜롬비아에선 이걸 란차라고 불렀다. 작지만, 여기에 많을 땐 20명까지도 탈 수 있다. 물론 짐도 엄청나게 실린다. 란차를 타고 도착한 콜롬비아의 첫 마을 후라도의 선착장에는 군초소가 있어, 군인들이 먼저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는 바이아 술라노 행 란차를 다시 탔다. 더보기
내 생애 첫 남미 그리고 그 배가 고쳐지는 동안 우리는 가랑잎처럼 흔들리는 배 안에 앉은채 기다려야 했다. 파도치는 바다에서 흔들리는 배 안에 앉아 있으려니 나도 미칠 지경이었고, 스피드보트에선 멀미를 하지 않던 스테파니도, 배가 멈추어 있으려니 멀미가 날 지경이라며 괴로워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운전수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삼십여분을 가랑잎처럼 흔들린 후, 드디어 운전수가 돌아왔고, 배를 고쳐준 보답으로 우리 배의 승객 두 명을 옮겨 실은 그 란차와 경쟁하며 배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약간 가벼워진 배는 더 미친 듯 달렸고, 바가지로 뿌리는 듯한 바닷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우리를 앞질러가는 배가 만들어 낸 물살에, 우리 배는 또한번 엄청나게 요동을 쳤고, 나는 속으로, 그만 해! 천천히 가란 말이야 이자식아.. 더보기
롤러코스트 같은 배를 타고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우리에겐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출국 스탬프. 하케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사람과, 받을 수 있다는 사람이 섞여 있었으므로,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서 스탬프를 받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그 배를 타고 파나마시티로 돌아가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쉽게, 마을에 있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서 받을 수 있었다. 더운 나라 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특히나 시골마을에서 더욱 더 그렇듯, 하케의 이미그레이션 직원들도 느렸다.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이 길었고, 무엇하나 부드럽게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를 무렵, 우리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벽에 붙어 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인내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파나마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