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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프리카에서 보낸 편지

6개월, 아프리카 종단을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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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배에서 내려 커스텀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온 것은 한시 쯤이었다. 세명은 먼저 나가고,
영국아저씨는 오토바이 때문에 좀 더 오래 걸리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서 아스완 시내로 갔다.

미니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다보니, 이제껏 하나도 보지 못했던 한국 사람들이 잔뜩 있는거다.
하도 많아서 나는 패키지 그룹이 온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국은 지금 겨울방학이더군.
대학생이며 선생님들이 잔뜩 몰려나올 때인거지.

나는 너무 반가워서 먼저 말을 걸었다. 6개월동안 아프리카 종단을 끝내고, 이제 막 문명세게,
이집트로 들어온 내 몰골은 생각지도 않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기분이 상했다. 카이로에 도착하고까지, 계속 그랬다. 그래서 이제 그냥 말 안걸기로했다.

시간이 좀 늦어져 곧바로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crazy korean 이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나는 강행군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종단을, 카이로까지 끝내고 싶었고, 카이로에
먼저 와 있는 야스상도 만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이제 막 만나 친해지기 시작한 사람들이랑도
헤어지기는 아쉬웠다. 아스완에서 다시 만나 몇시간을 같이 보내고, 카이로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는 헤어졌다.

3년만에 다시 보는 아스완은 놀랄만큼 변해 있었다. 길들이 포장되고, 건물들이 깔끔해지고, 거리가
삐까뻔쩍 빛나고, 관광객들에 넘치고 있었다. 놀랍다, 생각만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저, 수단에서 올라오다보니, 아스완도 큰 도시로 느껴진 것 뿐 아닐까 싶기도했다.

다시 3년만에, 아프리카 14개국을 통과해서 이집트로 돌아오니, 이집트는 선진국이라는, 여긴
발전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한국에서 날아온 사람들은 모든것이 불편하고, 미개하게
느끼고 있겠지만, 나는, 나에게는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처럼, 모든 것이 익숙하고 쾌적하게만
느껴졌다.

카이로에 도착하고는 3년 전에 오래 있었던 호텔에 다시 체크인을 했다. 가격만 올랐을 뿐, 모든
것이 똑같았다. 아침식사 메뉴까지 똑같았다. 씻고는 다른 호텔에 묵고 있는 야스상을 만나러 갔다.
야스상은 한달 반 전에 도착해서, 아직까지도 카이로에서 움직이지 않고, 장기체류를 하고 있었다.
야스상을 붙들고는, 교통사고 당한 이야기 하며, 에리트레아 비자 못받고 마음 상한 이야기 하며,
수단에서 외롭고 힘들었던 이야기하며, 주저리 주저리 몇시간을 떠들며 하소연을 했다. 야스상이
차도 사주고, 시샤도 사줬다.

오자마자 인도비자를 신청하겠다는 계획은 깨졌다. 금요일이더라고. 일요일까지 그냥 붙들려 있을
수 밖에 없는 거지 뭐. 쉬고, 인터넷이나 하면서, 사람들이랑 수다 뜰고. 3년 전에 했던,
장기여행자의 전형적인 생활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렇게 6개월만에 아프리카 종단을 끝냈다. 인도를 다녀온 후에 아라비아반도에 갔다가, 유럽으로
갈까 싶기도 하다. 살인적인 물가가 좀 두렵기는 하지만, 이제껏 친분을 쌓아놓은 사람들의 집만
전전해도 숙소비는 그닥 많이 들지 않을 거니까. 유럽쯤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면 다시
시작해야지. 서아프리카를 갈지, 남미를 갈지는 모르겠지만.

병은 병이다. 지겹다, 힙들다 하면서도, 또 다른 곳에 갈 계획을 먼저 세우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