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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다시인도에서 보낸 편지

푸자

그 외에 바라나시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쇼핑이나 하러 다니고, 거의 매일밤 푸자를 보러
다닌 것 정도. 인도가면 옷 사야지, 인도 가면 다 버려야지 했던 내 계획대로, 옷 사서 입고,
아프리카 내내 함께한 구멍 뚫리고 닳고 헐은 옷들을 다 쓰레기통에 집어 넣고, 좀 성한 건
남주고, 했다. 인도 옷으로 사악 갈아 입었다. 역시 인도의 쇼핑은 즐겁다. 싸고 예쁜 옷들이
잔뜩 있고, 흥정하는 재미까지 있으니.

옷을 갈아입고, 나는 푸자를 보러 다녔다. 푸자는 제사의식 같은거다. 생명의 강, 강가에 있는 많은
가트들, 가트는 제단, 이라고 하면 될까. 가트는 종류가 있다. 죽은 사람들 화장하는 가트, 제사를
올리는 가트, 목욕하는 가트 등. 강가에 있는 수십개의 가트들 중에서 몇몇 큰 가트에서 매일 저녁
해질 무렵부터 생명의 신, 강가에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

다섯개의 제단 위에 다섯 명의 사제가 서서, 소라껍질 나팔을 불어서, 푸자의 시작을 알리고, 향을
피우고, 초를 켜고, 불을 켜고, 꽃잎을 뿌리고 하는 의식을 하는 동안, 종은 뎅뎅 울리고,
'옴 나마 시바' 하는 시바의 말을 전하고, 손뼉 치고, 노래부르는 시간이 계속 된다.

한시간 정도 되는 푸자의 마지막에 사람들은 생명의 강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씻고, 머리를 씻고,
초를 켠 꽃접시를 강가에 흘려보내며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빈다. 나도 매일 푸자를 보고, 아이들이
파는 꽃을 사서 띄워 손을 모으고, 끝난 후에 나눠주는 사탕을 먹으며 돌아왔다.

이집트에서 같이 있었던 친구가 온 후에 우리는 셋이서 배를 타고 푸자를 봤다. 매일 강쪽을
바라보며 푸자를 봤는데, 이번에는 강쪽에서 푸자를 마주보게 된거다. 배를 타고 나가니, 배를 타고
꽃을 팔러 왔다. 바가지 쓴 요금인줄 알면서, 그냥 꽃을 사서 띄웠다. 정면에서 푸자를 바라보며,
큰 접시로 꽃을 사서 띄웠다.

큰 꽃이라 그런지, 아무런 장애물 없이, 강 한가운데에서 흘려보내 그런지, 왠지 이번에는 정말 그
아이가 가버리는 듯 했다. 그래서 잘가라, 다음 생엔 좀 더 행복해라, 하고 인사를 했지만, 그래도
내 맘 속에 끈 하나는 잡고, 놓지 못했다.

다음날도 푸자를 보러 갔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든 바가지를 씌우려 했을 꽃파는 아이들이,
왠일인지 돈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 가란다. 그리고 내가 꽃을 띄우고 있으려니 자기한테 남은
꽃을 다 주며, 전부 다 띄우란다. 왜 오늘은 돈 안받니? 라고 물어니 그냥 노프라블럼 이란다.

같이 있던 친구는 다른 아이가 주는 꽃을 띄우고는 나중에 큰 돈을 달라고 해서 황당했다는데,
나에게 꽃을 준 아이는, 처음에 어떤 의도로 나에게 꽃을 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꽃을 띄우며
내 눈에 눈물이 맻히는 걸 봐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인도의 이런 순진함이 좋다. 처음에는 어쩔 작정으로 꽃을 자꾸 주며 이것도, 이것도 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는 사람 앞에선 나쁜 말 하지 못하는, 인도는 아직 이런 순진함이 있다.
내가 어떤 상황이든 와서 사기치고, 돈 달라고 하는, 이집트나 에티오피아의 사기꾼들과는 차원이
틀리잖아. 거기도 물론 몇몇 악질 녀석들 때문에 나한테 욕을 먹는거긴 하지만.

 

03/24/2008 01:54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