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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프리카에서 보낸 편지

포트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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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수단행 버스를 타고는, 자리를 잡고 바로 잠이 들었다. 티켓을 사러 갈까 생각도 했지만, 몸이
너무 안좋아, 버스 안에서도 팔겠지 하고는 그냥 잤는데, 버스가 출발하고는 티켓을 걷는거다.
버스 요금이 얼만지도 모르니 40파운드를 건네 줬더니, 티켓 없느냔다. 없다고 했더니, 기사가
뭐라뭐라 하고, 승객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잔돈은 나중에 주겠지 하고, 잤다.

세시간쯤 잤나. 몸이 좀 개운해 지는 듯했다. 버스는 휴게소(그냥 서명 다 휴게소지 뭐)에 섰다. 내
뒤에 앉은 여자한테 버스 요금 얼마냐고 물어보니 24란다. 그래서 잔돈 4를 꺼내, 차장한테 4 줄테니
20달라고 했다. 잔돈이 없어 그러는 줄 알았거든. 그랬더니 웃으면서 없단다. 못 준단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큰 소리로 4를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4 먼저 달란다. 웃기지 말라고 눈알 부라리며
10짜리 하나와 5짜리를 빼았았다. 마지막 5짜리 하나까지 손에서 낚아 채고는 자! 아르바(4) 하고는
줬다. 너 미친거 아니냐고 욕하면서.

그랬더니, 나중에 기사랑 차장이 같이 오더니 24를 다시 주며, 차이나! 할라스(끝)라며 내리란다.
웃기지마, 포트수단에서 할라스지 여긴 아니야. 포트수단은 아르바인(40)이란다. 뭔 소리냐고
아르바 오 잇쉬린(24)라고. 막 또 지랄들 한다. 내 뒤의 여자가 24가 맞다고 도와준다. 표 안사둔
내가 나빴지. 결국 버스에서 한번도 안내리고 뻐팅기고 앉아 12시간을 왔다.

몸은 다시 흐물흐물. 또 릭샤 타고 호텔 찾느라고 뻉뻉 돌다가 겨우 잘만한 숙소 찾고, 첫 식사로
전날과 똑같은 샌드위치 먹고... 지겹다 이 지겨운 짓을 왜 죽어라 하는지 몰라. 현지인들처럼
땀냄새 나는 몸을 씻고, 제발 오늘만큼은 벌레에 물리고 싶지 않다고, 옷도 싸그리 다 갈아 입고,
빨지 않은 옷은 가능한 멀리 던져둔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2007년의 마지막 날. 오늘은 무조건 쉬기로 작정한 날이었다. 해가 뜰 무렵 깨서는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구름은 해가 완전히 뜬 후에야 없어지고, 뜨거운 태양만 남았다.
내일도 마찬가지겠구나 싶었다.

빨래를 했다. 청바지돠 잠바를 빨고 운동화도 빨았다. 쉬엄쉬엄 하나씩 빠는데, 나중에 보니 내
티셔츠와 수건에 파리들이 잔뜩 앉아 쉬고 있는게 보였다. 구역질이 났다. 다 쫓아 버렸지만,
파리들은 다시 몰려왔고, 파리똥인 듯한 점들이 옷에 잔뜩 묻어 있는게 보였다. 씨불. 그래도 무는건
아니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 했다.

빨래를 하다 쉴 때엔, 혼자 방에 드러누워 노래를 불렀다. 힘들 땐 모국어로 노래를 부르라던 어느
한의사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거든. 노래 부르고 누워있자니, 눈물이 났다. 사고 이후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오후엔 바다를 탐색하러 갔다. 사람들이 바다라며 가르쳐 준 곳은, 방파제 안쪽 갇힌 물이었다. 이거
말고 크고 넓은 홍해 어딨느냐고 물었더니, 릭샤 타고 15분은 가야한단다. 씨불. 그 새벽에, 뜰지
안뜰지 모르는 해를 보러, 시간과 돈을 들여, 거기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 나는 할만큼 했다고,
그냥 항구라도 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까페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고 있으려니, 그 까페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직원이 다가와, 지금 쓰는게 중국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일본어냐고 묻더라. 넌 에티오피안이냐? 하고 되물었더니, 놀랍게도
자기는 에티오피안이란다. 그래서 니가 나한테 차이나냐고 물었구나. 에티오피아에서는 다들
나한테 유!와 차이나!만 외쳤거든. 그랬더니, 쏘리, 한다. 지잘못도 아니면서 쏘리라니.

그래도 이런데까지 나와 일하고 있는 애들은 착한 애들이다. 먹고 살겠다고, 살아 보겠다고,
일하잖아. 빌어먹을 놈들은, 그 피아사의 개들이지. 외국인 등쳐먹거나 하나 꼬드기는거 말고는
인생의 계획이 없는 놈들.

어두워질때까지 편지를 쓰다가는 돌아와서 씻었다. 씻지 말까, 잠시 생각도 했지만, 올해의 묵은
때는 벗어야지 싶어 씻었다. 내일은 2008년의 첫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고, 내일부터는
2008년의 태양이 뜨겠지. 오늘고 다를바 없는, 하지만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면서, 2007년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