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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카프카스, 아제르바이잔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일단 밥부터 먹었다. 밥을 먹고 비싼 값을 치를 때만 해도 그 식당은 항구 앞이라
비싼 것이려니 하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바쿠에서 처음 하루를 보내고 그 식당은 싼 편이었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호텔까지는 택시를 타야했고, 가장 싼 듯한 호텔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50달러
란다. 다른 방은 없는가 물어보니 더 비싼 방도 있어, 한다. 그렇게 비싼 가격은 내고 싶지 않아 나왔다.

우리가 갈 곳은 기차역에 딸린 간이숙소 뿐이었다. 여기는 20달러였다. 시설을 생각하면 결코 싸지
않은 값이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부부가 아니면 한방에 묵을 수
없다는 거다. 수단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4인용 도미토리를 4인분 값 치르고 혼자 묵어야 하던.
또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일단 부부라고 거짓말을 해 봤다. 믿어주지 않는다. 니들 국적도 다르고 성도 다른데 무슨 부부냐고.
한국에서는 부부가 성이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믿어주질 않는거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나 때문에 귀찮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코지한테 사과를 했더니, 아니라고, 터키말
하는 내 덕에 자기는 오히려 편하다고 고맙단다.

사실 그 말도 맞다. 투르크멘, 아쉬가밧에서 만나 같이 다닌 이후로, 내가 주욱 통역을 하고 있었고,
그 덕에 버스를 공짜로 타기도 하고, 먹을 걸 얻어먹기도 했거든. 터키말이 통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투르크멘과 아제르이잔에서는 터키말 때문에 덕을 많이 봤다.

비자기간에 쫒기며, 늘 바쁘게 다니던 중앙아시아를 드디어 끝내고, 오랜만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푹 쉴 수 있는 곳에 왔지만, 바쿠는 그럴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선 물가가 너무 비쌌다. 호텔도
그랬지만, 식사도 비쌌다. 수퍼에서 팔던 토마토가 1킬로 3달러라는 사실에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게다가 사람들은 금방 짜증을 냈다. 물건을 고르다가 조금만 시간이 걸려도, 길을 물어도 짜증을 냈다.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쿠는 참으로 볼 것 없고, 할 것 없는 도시였다. 그나마 구시가지가 가장 유명한 관광포인트라
구시가를 위해 하루를 투자했건만, 구가지 관광은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두시간만에 끝나버렸다.
케르반 사라이 유적은 기념품들 파는 가게가 되어 끈질기게 삐끼질을 했고, 나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긴 했지만, 너무 상업적이었다. 바쿠항에 있다는 범선들은 다들 어디로 가버렸나 알 수 없었고, 마을
하나만큼 넓다는 바자르도, 크기만 할 뿐, 특별한 건 없었다.

예전 무르갑에서 만난, 중앙아시아, 카프카스를 매년 여행한다는 프랑스인이, 바쿠는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는데, 뭘보고 한 이야기인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닷가 마을이라 바람도 불고,
물소리도 들리고 해서 기분이 좋긴 했지만, 오래 머무르기에 맘편한 곳은 결코 못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2박만 하고, 사흘째 밤기차를 타고 셰키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에 감기에 걸려버렸다.

셰키는 또 비싸서, 호텔에 40달러를 내야 했다. 하지만, 묵기로 했다. 40달러의 가치는 있는
호텔이니까. 옛날의 캐르반사라이, 대상들의 숙소를 개조해서 만든 아주 운치있는 호텔이었거든.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구질구질한 호텔에서 자고 싶지는 않아, 하룻밤만 묵고 바로
떠나기로 하고는 짐을 풀었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마을 구경을 하는데,
비가 내렸다. 얼마만에 보는 비인지.

산 속 마을이라 그런지 계속 구름이 끼고 선선했다. 남의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그래도
바쿠만으로 아제르바이잔을 끝내지 않고, 이런 시골마을에도 들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은 비싸지만 좋았고, 그 외에는 물가가 훨씬 싸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으니까. 바쿠로
끝냈다면 좋지 못한 기억만 가지고 이 나라를 떠나야 했을테니까.

셰키의 캐르반사라이에서 만족스런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다음날 겐제라는 곳으로 갔다.
아제르바이잔 제2의 도시였고, 국경을 넘어 그루지아로 가기전 머물기 위한 도시였다. 그리고,
겐제에도 고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0/08/2008 10:5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