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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카프카스를 떠나 터키로

그리고, 이틀 후에는 트빌리시 근처의 도시 무쯔헤타의 축일이었다.
옛 그루지아 정교의 총본산이 있던 도시이니만큼 그 종교축일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엇다.

대성당은 말그대로 인산인해, 내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쓸려 들어갔고,
교회안에서도 내가 둘러보는게 아니라 떠밀려 조금씩 나아가야 했다.
조금 떠밀려 다니다, 발버둥쳐 밖으로 나왔다. 날을 잘 고른건지 잘못
고른건지 우리는 다른 관광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교회를 빠져나오면서 보니, 대목을 노린 많은 장사치들의 수 만큼,
불구자들 거지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무쯔헤타로 오던
마르슈 안에서 내 뒷자리에 2인석에 어른 아이 6명이 끼어 앉아 큰 소리로
떠들며 신경 거슬리게 하던 집시 가족도 그룹에서 보였다.

종교적인 축일인 만큼 자비를 바랄 수 있는 오늘은 그들에게도 대목이겠지.
하지만 누구에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은 듯, 그들의 몸도, 경제적 형편도
불편한 그대로인 듯했다. 그들은 예배를 위해 온 걸까, 돈벌이를 위해 온
걸까.

무쯔헤타의 축일에 지쳐서 돌아온 우리는, 그루지아 다른 지방의 관광을
포기하고 이틀 후, 그루지아를 떠나 터키로 갈 것을 결심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다. 와인으로 유명한 테라비, 탑처럼 생긴 집들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메스티아 등, 그루지아는 흥미진진하고 볼 것 많은 나라인거다.

하지만 그 중 내가 제일 가보고 싶었던 카즈베기에는 이미 다녀왔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엔 지쳐, 모레쯤 그루지아를 떠나지 않을래? 하는
카즈의 제안에 내일이라도 좋아! 하고 대답하고 말았던 거다.


그루지아 마지막날, 삼고리 바자르에 구경갔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바자르들을 훑어 보는데, 첨엔 그냥 야채 팔고, 고기 생선 파는 보통
시장이더니, 다른 시장에는 벼룩시장처럼 재활용품, 골동품 같은
흥미진진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잔뜩 있었지만 들고 다니기도 힘들고, 금전적인 문제도
있어, 들고 다니기 쉽고 활용도 높은 트럼프랑 도미노 게임만 사서, 구경만
실컷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예레반에서 매일 같이 놀던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날밤은 오랜만에 뭉친 멤버들이랑 밤늦게까지 훌라를 했다. 카즈랑 같이
다니는 동안, 훌라로 돈 엄청 벌었다. 둘이서 할 수 있는 카드게임이란 흔치
않으니까. 그리고 훌라는 내기를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길고
지루한 밤이며 몇시간이고 내기훌라를 했거든. 난 한번도 진 적이 없으니.

그리고 그날밤 또 엄청 벌었지. 7달러정도. 하루 여행경비가 15달러 내외인
우리에게 7달러란 엄청 큰 돈이거든. 훌라가 나에게는 효자종목이지.
달러도 비싼데,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5년전 훈자에서도 긁어보았는데.
훌라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지.


그리고 다음날 밤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터키, 트라브존으로 갔다. 새벽,
트라브존 오토가르(장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순간, 아잔이 울렸다.
한달 넘게 기독교국가에 있다가, 오랜만에 아잔을 들으니, 다시
이슬람국가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나더라. 왠지 정겨운 소리.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터키로 들어오는 버스에서부터 사람들이 모두
터키말을 했고, 말이 통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방 안에서
뒹굴거리다가 텔레비젼 보고, 책읽고, 하며 잠깐씩 밖에 나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또하나 국경을 넘고 반갑고 즐거웠던 건, 찻집이었다.어느 쪽인가 하면
홍차대신 커피를 즐겨마시던 아르메니아 그루지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앉아 수다 떨고 게임하며 시간 보내는,
300원에서 500원 정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길에 널려 있는 거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며, 얼마든지 쉬어 갈 수 있는 거다.

 

12/20/2008 04:3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