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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리랑카에서 보낸 편지

초록빛 빛나는 섬, 스리랑카로

세상에 적응되지 않는 일이 있을까. 아끼던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경험이라,
몇번 겪고 나니, 이미 없어진 것,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포기도 빨라진다.
여전히 속상하고, 화나고 잃어버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 속상해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렇게 사는건가 보다.

계속 차고 다니던 발찌가 사라졌다. 어느 순간 보니 없더라. 처음 인도에 갔을 때,
여행이 즐거워지기 시작한 날, 기념으로 바가지 옴팡 써주며 산건데, 이번에 다시 여행을
나오면서부터 계속 차고 있었는데, 발찌가 늘어난건지, 발에 살이 빠진건지, 자꾸만 벗겨지는게
좀 불안하긴 했다.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었어,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다시 인도가서 더 예쁜거 사면 되지 뭐, 하며.


또다시 시작되었다. 정보도, 가이드북도 없이 일단 떠나고 보는 대책없는 여행이.
스리랑카다. 인도의 남동쪽에 눈물모양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의, 불교유적이
잔뜩 있는 동네 아누라다푸라라는 곳에 와 있다. 한때는 이 땅의 수도였던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그냥 유적만 잔뜩 있는 시골마을 같다. 온 동네가 나무와 풀에 휩싸인.

스리랑카로 가야겠다고 계속 생각만 하고 실제로 비행기표를 산 건 4월 4일. 인터넷에 아주 싼
티켓이 나왔길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예약을 해 놓고 나니, 비자관계가 어떻게 되나 아직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니, 30일 관광비자는
공항에서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더군. 그래서 4월 6일에는 비행기 타러 가야하는 도시 첸나이까지
기차표를 예매해 놓고 나니, 이번엔 테러다.

같은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던 일본친구가 친절하게도 알려 주더군. 그러고보니, 오늘 콜롬보에서
폭탄테러가 나서 사람이 많이들 죽고 다치고 했던데, 뉴스 봤니? 라고. 표 사기 전에 한번 1년 중
4월이 가장 더운 시기라는 정보에 조금 주춤했었는데, 표 사자마자 다시, 폭탄테러에 잔뜩 쫄게
되었지. 스리랑카도 민족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거든. 불교도들이 집권한 이후로 10퍼센트가
채 안되는 타밀족이 독립하겠다고 설치는 거거든. 어쩔래? 지금 위험한거 아냐? 그러길래, 오늘
한번 터졌으니 당분간은 안나겠지. 지금이 가장 안전한 시기일거야, 라고, 답해주긴 했지만,
조금 긴장은 되더군.

첸나이에서 뜨거운 2박3일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던 날, 내 비행기는 싼 티켓이라 그런지,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밤 10시 45분에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12시쯤에 콜롬보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밤을
새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착이 되었다. 나로선 잘된 거였지. 콜롬보 공항보다는 인도공항이
더 익숙하니까. 처음 한시간이 늦어지고, 다시 한시간이 늦어진다는 방송 후에도 우리 비행기는
출발 신호가 없었다.

조금 불안해져 있는데 또 뭐라고 방송을 한다.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못알아먹어 주변 한바퀴
둘러보려 일어서는데, 아까 체크인할 때, 내 뒤에서 카터러 자꾸 밀던 아줌마가 어디론가 가는게
보였다. 뭔가 싶어 따라가보니, 연착된 우리 비행기 승객을 위해 음식을 주는 거다. 나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더니, 게다가 밥까지 주다니. 혹시나
기내식이 안나오면 배고플까봐 비스켓만 가지고 있었거든. 간혹 싼 비행기는 기내식이 유료인
경우가 있거든.

조금만 더 늦어졌으면 하던 비행기는 한시반이 지나자 탑승을 시작했고, 2시에는 안전벨트 착용
사인도 꺼진채, 기내식용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었다. 탑승 수속 시작하고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한시간 반 후에는, 나는 콜롬보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대를 거치고, 가방까지 찾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세시, 해가 뜰때까지만, 세시간만 기다리자 하고 버텼다.

 

04/28/2008 06:0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