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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주말시장 탈쿠치카

내가 주소만 갖고 그 홈스테이에 도착했을 때, 그집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문을 두드려볼까 하다가,
어느 문이 주인집인지도 모르고, 너무 이른 시각인가 싶어 9시가 되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거의
아홉시가 다 되어 주인아줌마가 밖으로 나왔다. 나를 방으로 안내해주고, 아침밥부터 차려주었다.
사실 아침의 그 식사에 나는 감동했다.

비록 어제 먹다 남은 밥인지 모르지만, 따뜻하게 데워서, 계란 후라이까지 해서는 얹어 주시는 거다.
식사포함의 요금이긴 했지만, 보통 포함되는 식사는 저녁과 다음날 아침 정도거든. 도착하자마자
지치고 배고픈 나에게 제공된 밥과 따뜻한 차이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밥을 먹고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정말이지 피곤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짧으니까.

세면도구를 꺼내려고 가방을 연 순간 소름이 끼쳤다. 가방 속의 짐이 뒤죽박죽이 되어 섞여 있는 거다.
옆과 위 주머니를 다 뒤지고, 몸통까지 뒤지려다 위만 건드리고 만 모양이었다. 없어진 건,
타쉬켄트에서 산 물티슈 하나 뿐인 듯 했다. 다른 것들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뜻 보기엔 알 수 없었다.
로션은 뚜껑이 벗겨져 새고 있었고, 세면도구를 넣어두었던 비닐에는억지로 뚫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가방을 맡겨두었던 건, 세번, 박물관과 티켓 판매소와, 택시기사 집이었다. 택시기사는 아닌 것 같고,
가장 의심스러운 건 박물관의 공사 일꾼들이었지만, 비자기간도 얼마 없는데 거기까지 따지러 갈 수는
없었다. 내 물건들을 누군가 모르는 현지인 남자들이 뒤졌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투르크멘 사람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인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하게 뭔가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수단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좋은데 나 개인에게는 좋지 않은 일들이, 큰 일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던. 거기서 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이것저것 많이 잃어버렸었거든. 투르크멘에서는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뒤통수를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샤오우즈까지 가서, 자기집에 데려다 밥까지 대접해줬던 착한 택시기사는 마지막에 기름값좀
달라고 했고(니네 나라 기름 엄청 싼거 알거든!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쉬가밧에 도착하기까지
친절로 일관하던 미니버스 기사도, 손님들이 다 내리고 둘만 남게 되자, 너랑나랑 둘이 같이 호텔 가서
자는건 왜 안돼? 하며 헛소리를 했다.

너 투르크멘 말 할줄 아니? 하며 호기심을 보이던 택시기사 아저씨도 나중에는 짜증을 냈고, 친절하게
가방을 맡아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 가방을 뒤졌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거지. 거기까지가 내가
투르크멘의 국경을 넘고 24시간 안에 일어났던 일이다.

좋은 듯, 그렇지 않은 듯 하루가 지나갔고, 어쨌거나 나는 관광을 계속해야 했다. 시한폭탄처럼 비자
만료 시각이 다가오고 있는거다. 내가 가진 5일동안 내가 처음 세운 계획은 이랬다. 아침일찍 국경을
넘고, 두세시간만에 콘야우르겐치의 유적을 구경한 후, 합승택시로 아쉬가밧에 가서 하룻밤 잔 후,
다음날 아침 주말시장, 탈쿠치가와 아쉬가밧 시내를 구경한 후 밤기차로 투르크멘바쉬로 가서
사흘째의 아침부터는 항구로 가서 배를 기다린다는 게획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획을 바꿨다. 콘야우르겐치의 유적을 천천히 구경한 후 밤차로 아쉬가밧에 가서
탈쿠치카 바자르와 시내를 구경한 후,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오전에 일요일엔 문을 닫는
카펫박물관을 구경한 후에 합승택시로 투르크멘바쉬, 사흘째 저녁부터 배를 기다리기로 한거지.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는 계획이었지만, 세계 최대의 카펫은 보고 싶었다.


내가 아쉬가밧에 도착한 것은 일요일, 주말에만 열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자르를 보러 갔다. 현지인들
뿐인 바자르였지만, 여러가지 기념품들과 카펫도 팔고 있어, 내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시장이었다.
내게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볼만한 시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미친듯 쇼핑을 했다.
많이 자제했지만, 스카프와 가방, 모자 같은 기념품들을 사고, 작지만 예쁜 카펫도 사고 말았다. 큰걸
사고 싶었지만, 운반하기도 힘들고, 큰 카펫을 사면 출국시 세관에 신고하고 세금도 내야하는게
귀찮아 작은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실로 카펫의 나라였다. 투르크멘의 국기도 카펫분양이다. 투르크멘을 구성하는 다섯부족의
문장이라고 하지만 역시 그것들은 투르크멘 카펫에 자주 쓰이는 다섯가지 문양인거다. 어느 집에 가도
바닥에, 벽에, 카펫이 장식되어 있었고, 바자르의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카펫시장이었다.

 

09/11/2008 06:1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