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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아라비아에서 보낸 편지

아라비아 반도에 서다

아프리카 종단이 끝나고 편지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뭐, 안쓴다고 뭐라할 사람도 없고,
읽는 너도 힘들거고,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여행하면서, 이거 말고는 하는 일도 없는데,
이거 말고는, 남는 기록도 없는데 싶어, 다시 볼펜 들고, 공책 사서 쓰기 시작한다.

여기는 예멘. 한국사람들에겐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곳이지만, 여행자들은 천국이라고 말하는
곳이다. 좋다고 좋다고, 모두가 말하는 곳은 정말 좋더라고. 파키스탄의 훈자가 그랬고, 이집트
다합이 그랬고, 여기, 예멘이 그렇다. 좋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가서, 되려 실망하는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곳은 정말 좋더군.

예멘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가, 하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아라비아반도, 터키에서보자면
동남쪽, 이집트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 이란과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거의 다 땅을 차지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가 있다. 그 아라비아 반도의 남쪽
끝에 길게 자리하고 있는 나라가 예멘이다.

해상교역로 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예전부터 많은 나라들이 탐을 내오던 나라지만,
어쩐 일인지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길가에는 거지도 거의 없고, 마음도 여유로운 사람들인 듯하다.

사실 예멘은 오빠를 데리고 오려고 했었다. 좋다 좋다 말도 많이 들었고, 마을 거리도 예쁘고,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니만큼 이슬람 국가 특유의 분위기도 많이
지켜지고 있는 곳이라고, 해서 오빠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게 하고 싶었다. 이슬람 국가를 많이
거쳐온 (생각해보니 4년 가까운 시간을 나는 이슬람국가에서 보냈더군) 내 눈으로 보는 것과,
이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울오빠의 눈으로 보는 예멘은 확연히 다를 거니까.

그래서 오빠가 여기에 와서 신선한 눈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고, 좋은 사진도 찍어 전시회도 열고,
그걸 기회로 또 다른 나라도 가 보고 하길 바랬는데, 역시 먹고 살기 바쁘니까 시간 내기가
힘든가봐. 오빠가 못오게 되면서 예멘은 다음으로 미룰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좋은
나라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지금 떠나면 언제 다시 중동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더군.

하지만, 카이로에서 예멘을 들렀다가, 한달쯤 있다가 인도로 가려고 하니, 비행기표가 너무
비싼거다. 그래서 궁리끝에, 카이로에서 인도로 가는 예멘항공에, 한달 예멘 스탑오버를 신청했다.
그랬더니, 인도로 곧장 가는 티켓보다 50불 정도 더 주고, 예멘을 거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날짜가 정해진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썩 좋은 느낌이 아니다.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어도, 시간에 쫓겨 계속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 다음에 다시 올거야, 또 올거니까
그때 천천히 보면 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은 3월 2일. 비행기를 타기까지 5일 남았다. 수도인 사나아에 1주일 정도 머물다, 호데이다,
코하, 타이즈, 아덴을 거쳐 자그마한 시골 바닷가 마을인 이곳 비르알리에 오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도중에 있는 여러 작은 마을들에도 들렀고, 거의 매일 빠짐없이 부지런히 관광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관광하고 다니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이제는 특별히 보고싶은 관광지도 없고, 봐도
별 감동도 없고 해서 말이야.

하지만 아프리카에 있다 와서 일까. 예멘의 자연도, 그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그들이 지켜가고 있는
전통도, 아주 보기 좋다. 지금 같이 있는 일본아이가 제법 부지런히 관광하는 편이라,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을 곳들까지, 열심히 구경하고 다니며,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다음에 다시 와야지,
어떻게든 오빠 끌고 꼭 다시 와야지, 다짐하고 있다.

 

03/10/2008 04:0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