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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프리카에서 보낸 편지

수단, 사람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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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쉬었더니 몸도 거의 다 나았다. 몸살도 거의 다 나아 열도 내리고 콧물도 기침도 거의 멈추고,
머리도 안아프다. 교통사고 후유증도 거의 끝나간다. 멍든 곳들도 거의 가라앉았고, 손목도
무리하지 않으면 별로 아프지 않고, 종아리 근육 뭉친 것도 많이 나았다. 그래도 역시 교통사고란게
무섭구나 생각은 들더라. 멍들고 삔 정도인줄 알았는데, 보름이 넘도록 남아 있으니 말이야.

몸도 좀 낫고 해서, 일생에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은 이 나라 사진이나 좀 찍어 두려고, 거리를
싸돌아 다녀봤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냥 이슬람의 큰 항구도시일 뿐. 그래도 여긴, 나를 먼저
찾아와 사진 찍어달라는 아이들이 많다. 카메라가 신기한거지. 아프리카에서는 카메라만 꺼내면
도망가거나, 돈을 달라는 통에 사람들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는데. 먼저 찍어달라는 경우는
처음이다.

보기에도 너저분한 차림새의 아이들이 사진 찍어 달란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더니, 한
덩어리로 뭉쳐 온갖 별난 포즈를 취한다. 그래서 또 한사람씩 다시 찍어주겠다고 했더니,
텔레비젼에서 본 무술을 흉내낸다. 내가 중국사람인줄 아는거지. 참 밝은 아이들이었다. 찍고
보여주고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는 차유리 닦는 액체와 걸레와 통을 들고 자세를 취한다. 차유리
닦아주고 돈 받아 생활하는 아이들이었다.

여섯 명 중 앉은뱅이인 한 아이만 구걸을 하는 듯했고, 그 중 두명은 오른팔이 없었다. 혼자였던
나한테 해꼬지하거나, 내 가방을 건드리려거나 하려는 아이는 없었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밝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그대로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싶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디가'외침에 손을 들어 웃으며 답을 해주고, 내가 무슨 미스코리아도 아니고,
걸으면서 손 흔들고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화답이라니. 아직 지치지 않은 상태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했다. 물론 이 나라에도 차이나라든가 칭춍을 외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무시해버리고 혼자 미친놈! 하고 짧게 내뱉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사람은 좋은 수단. 사람은 좋다, 라는 말을 왜들하는지 알 것 같다. 사람만 좋고, 그 외에는
힘든게 많다. 일단 볼거리는 정말 없다. 이집트보다 피라미드가 먼저 세워진 곳이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오래되었다는 의미는 있을지언정, 그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보다 좋을거란 생각은
전혀 안든다.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고도 시큰둥했던 내가, 그게 볼만할거란 생각은 안들고, 그걸 보러 가기
위해서는 카르툼의 관광청 가서 퍼미션 받고 어쩌고 해서 절차가 아주 복잡하다. 귀찮아서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자연은 바다라고 왔더니 항구 뿐이고, 내룩은 거의 다 사막같은 황무지다. 또 수단은
국내에서의 물가는 그닥 비싸지 않은가, 외국인에게는 아주 비싼 나라다. 트랜짓 비자 받는데 8일
기다리고 61달러 냈고, 거주등록에 65.5달러.

게다가 버스 요금은 왜 그리 비싼지. 럭셔리 한국버스가 있다고 해서 한번 타 보려고 했는데,
46불이다. 한국에서도 4만원이 넘는 버스가 없는데. 그냥 반값의 일반 버스 타기로 했다. 현지인들은
그 버스 어떻게 타나 몰라. 게다가 버스 타고 이동할라니 또 퍼미션이 필요하단다. 오늘은 문
닫았고, 내일은 휴일이니, 모레 받아서, 그 다음날 버스 타라는 이야기지. 경찰한테 막 지랄했더니,
자기가 받아다 주겠다며 내일 아침에 오란다.

호텔이건 어디건 영어 간판이라곤 없지, 영어하는 사람도 없지. 이래저래 외국인이 여행하기는 참
힘들다. 그러니 수단, 사람은 참 좋아, 하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라는 말부터 줄여진 말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시간만 넉넉하다면, 그리고 돈도 많다면, 좋은 사람들 때문에
좀 더 머물고 싶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행하기 힘든 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는
찾지 않고, 따라서 사람들도 좋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시계도 되고, 알람도 되고, 허접하나마 게임도 되어 좋았는데. 수단국경을
넘던 날, 밤에 보니 없더군. 내가 다른 거 꺼내다 흘린거겠지 생각하고 싶다. 다만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