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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여행하며/2015 11월 중미3개국

세묵참페이 지나 플로레스로

안티구아를 떠나면서 고생이 시작되었다.

여행이란, 참으로 사서 하는 고생이다.

8시에 픽업 오기로 되어 있던 버스는, 다른 호텔을 돌고 돌아

9시가 넘어서야 우리 숙소에 도착했고,

그야말로 하루종일, 고물 버스를 타고 세묵참페이를 향해 달렸다.

꼬불꼬불 산길,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길,

중간에 비까지 내려 질척질척한 길을 하루종일 달려

랑낑에 도착한 것이 오후 6시.

거기서부터 다시 픽업트럭을 타고 예약해둔 엘포르탈 호스텔에 도착한 건 7시가 넘어서였다.

 

 

도착했을 땐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아침이 되어 보니, 작년에도 주렁주렁 달렸던 카카오 열매가 여전히 주렁주렁 달려있다.

올해도 과테말라의 카카오 농사는 풍년인 모양이다. 다행이다.

하지만 이 카카오들이 과테말라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의 어느 나쁜 회사가 바나나처럼, 카카오도 몽땅 다 헐값에 가져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카카오는 참으로 신기한 나무다.

굵은 나무 줄기에서 이렇게 조그마한 꽃이 피고 그것이 곧 저렇게 큰 열매가 된다.

가지 끝이 아니라, 나무 기둥 옆에 생뚱맞게 달려있는 열매.

 

숙소 바로 앞에 강이 흐른다.

세묵참페이를 지나 흘러내려온 물이다.

그냥 핸드폰 카메라로 대충 찍어도 멋진 그림이다.

 

 

 

강 건너편에는 동굴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동굴인데,

이 동굴 안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한손에 초를 들고, 한손으로 밧줄을 잡고 헤엄쳐서 지나가야하는 구간도 있어,

수영을 잘 못하는 한국사람들에게는 그닥 인기가 없지만,

유럽 젊은이들은 환장하고 좋아하는 투어다.

 

 

 

엘 포르탈은 이렇게 예쁘게 생겼다.

강을 낀 계곡에, 자연속에 만들어진 나무 집들.

하지만 자연 속이니만큼 전기는 저녁에 잠깐 발전기를 돌려주는 것이 다이고,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축축한 습기에 찝찝하고, 춥기까지 하다.

게다가 온갖 종류의 벌레들도 벗 삼아 지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은 밤이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고,

음악이 꺼지고나면 물소리가 들려오는

이 자연 속의 집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매년 나는 엘 포르탈로 간다.

 

 

 

자연 속에서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이틀밤을 보낸 후,

또다시 하루종일 고생스런 버스를 타고 플로레스로 이동.

워낙에 고물차라 좌석도 불편하고,

그 와중에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유럽 아이들은 쌍욕까지 섞어가며 쌈박질을 한다.

여행중에 그런 싸움은 피하고 싶다.

조금 더 좋은 자리에 앉은들 맘이 편할리 없다.


꼬불꼬불 산길과, 질척거리는 길을 달리고

이제는 더워진 길을 다시 달리다가, 강을 건넌다.

폭이 좁은 강이지만, 다리가 없어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배라고 하기도 뭣하지만, 저런 뗏목 위에 차를 10여대 싣고 강을 건넌다.

양쪽에 두개씩, 네개의 모터가 배를 움직인다.

이번엔 건너려는 차가 많아, 한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겨우 배를 탈 수 있었다.

과테말라가 얼마나 열악한 나라인지는, 이 배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리를 놓을 형편은 못되고, 배 또한 저렇게 엉성한지.

이동은 힘들고 길은 험하지만, 하늘은 예쁘고, 기분도 좋다.

 

 

드디어 도착한 플로레스.

예약해 둔 숙소에 들어가니 침대위에 요렇게 앙증맞은 수건이 놓여 있다.

아, 이제 다시 문명 속으로 들어왔구나.

발목 뒤에 잔뜩 물린 모기 자국을 기념으로 남긴채.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름다운 페텐 호수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