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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세계 최대의 분수, 세계 최대의 카펫

그리고 그날은 기절했다. 하룻밤을 거의 꼬박 새고, 이틀동안 그렇게 열심히 관광을 하느라 걸어
다녔으니, 기절할 만도 하지. 숙소로 돌아가 주인 아줌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배가 찢어져라 먹고,
기분좋게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또하나 투르크메니스탄의 재밌는 사실을 확인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가스는 공짜지만 성냥은 공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스렌지의 불을 24시간 켜둔다,
하고 가이드북에 적혀 있던 말이 사실이었던 거다. 요리를 하기 위한 가스렌지도 계속 켜져 있었고,
샤워할 물을 데우는 온수기도 계속 켜져있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물을 틀면 불이 켜지고,
잠그면 불꽃이 자동으로 작아지는 그런 좋은 온수기가 아니라 불이 계속 켜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스 온수기가 폭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물도 계속 틀어놓는 거다. 수도도 공짜니까
문제 없다.

샤워를 하고, 수도를 잠그지 말라고, 그러면 온수기가 펑! 하고 폭발하니까 프로블렘이라고, 몇번이나
주의 듣고서 샤워를 한 후, 다시 검사를 받고는 굿! 이라고 칭찬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식으로
가스와 수도를 쓰다가는 엄마한테 실컷 두들겨 맞을텐데, 여기 엄마들은 굿!이라며 칭찬을 한다.
놀라운 세상이지. 그리고 나는 아직 배가 잔뜩 부른 채, 젖은 머리 말리지도 못한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바빴다. 10시에 문 여는 카펫 박물관 가서 구경하고, 되도록이면 오전중에 투르크멘바쉬로
가는 차를 타고 싶었으니까.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싸 놓고, 카펫박물관으로 갔다. 문을 열기
15분쯤 전에 가서 기다리며 입장료를 물어보니 12불 정도. 이 나라 물가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거였다.
탈쿠치카 바자르에서 산 작은 카펫이 8불이 채 안되었는데. 카펫이나 더 살걸 그랬다고 후회도 했다.

돈이 모자라 환전을 해 오려고 박물관을 나가 바자르로 향하던 길에 코지를 발했다. 타쉬켄트 낡은
호텔 6층 베란다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멤버 중 하나였다. 우즈벡 떠나기전 내 일정을 메일로 알려
놓았더니, 나보다 하루 늦게 국경을 넘은 후 야간기차로 아침에 아쉬가밧에 도착해서, 내가 묵는
숙소로 찾아가던 길이라고 했다. 그렇게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니 엄청 반가웠다.

길가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하다가, 나는 계획을 바꾸어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날 천천히
아쉬가밧을 하루 더 구경하고, 저녁에 출발하는 야간기차로 코지와 함께 떠나기로 한거다. 사흘째
저녁에 도착하는 거나, 나흘째 아침에 도착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어보였던 거다. 먼저 기차표를
예매한 후,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가이드북에 의존해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가보니, 거기서부터 택시를 타고 한참 더 가야 케이블카 타는
곳이 있고, 그날은 월요일이라 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영어 조금 하는 사람이 알려
주더라. 운행한다는 확신만 있었어도 택시를 타고라고 가보고 싶었지만(싸니까) 타지 못할거면
시간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서 케이블카의 꿈은 접고, 독립기념공원으로 갔다. 전날은 멀어서 포기했던 공원이다.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갔더니, 놀라운 투르크멘바쉬의 작품이 거기에도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분수.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사람이 개미처럼 작아보일만큼 큰 분수대였다. 그건 분수라기보다
건물에 물을 뿜는 장치를 해 놓은 거라고 해야 맞을 듯했다. 6, 7층 정도의 높이에 고급레스토랑도
있었고, 1층은 쇼핑몰이 되어 있었거든. 그리고 분수대에는 투르크멘바쉬의 상징인 머리 다섯 달린
독수리가 몇마리나 장식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큰 분수의 엄청난 물소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 건물 1층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우리는 먼지 투성이 길을 뙤약볕 아래 걸어서
기념탑까지 구경하러 갔다. 안타깝게도 황금바쉬상과 독수리로 장식된 분수는 공사중이라 구경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 서점에 가서 투르크멘 기념품을 샀다. 투르크멘바쉬가
썼다는 '영혼의 서'라는 책을 사고 싶었지만, 도저히 운반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기념으로 그들의 영웅, 투르크멘바쉬의 사진은 샀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카펫박물관으로 갔다. 비싸다고 중얼거렸더니, 학생이냐고 묻길래 태국에서
5000원 주고 만든 가짜 학생증을 보여주고 반값에 들어갔다. 만들어두길 정말 잘했지. 그 가짜
학생증의 유효기간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카펫들은 울로 만들어진 것들 뿐이었다. 시장에서 팍던 것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 훌륭한 것들 뿐이었다. 분양하며 밀도하며, 여자 하나가 따라오며, 터키말로 설명을 해 줬다.
투르크멘 국기를 장식하는 문양들이 잔뜩 들어간 카펫들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기네스의
인정표가 붙어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펫이 건물 두 층에 걸쳐 건물 벽에 걸려 있었다.

크긴 컸다. 가로 21.2미터, 세로 14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40명의 아줌마들이10개월에 걸쳐 만든
거였다. 그래도 울카펫이니 10월에 끝났지, 실크였으면 몇년은 걸렸을거다. 이것도 역시 세계기록을
좋아하는 투르크멘바쉬의 지시로, 독립1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거였다. 그러니까 만들어진지는
아직 얼마 안된거지. 그래도 카펫 좋아하는 내게 충분한 눈요기는 되었다.

 

10/08/2008 10:1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