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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프리카에서 보낸 편지

먼지투성이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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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이다. 탄자니아 남부를 관통하는 24시간짜리 1등 침대칸을 타면서 22불쯤 내고는 씨부럴,
제기럴 왜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거렸는데, 그 기차는 싸고 좋은 거였다. 한칸에 네명씩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도 있고, 추울까봐 이불에 침대시트까지 깔아주니. 35불쯤 내고도 한칸에 8명씩 들어가
앉아 완전 다 찢어진 의자에 나무 바닥에, 탑승칸인지 화물칸인지 구분이 안될만큼 지저분한 객실에
앉아 있어야 하니.

수단의 기차에서 가장 힘든건 먼지다. 기차에 타니 이미 좌석이며 등받이며 바닥이며, 1cm는 되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휴지로 대충이라도 닦고 앉을 때만 해도, 그게 헛된 일이란걸 몰랐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누가 옆에서 먼지를 뿌려대는 것처럼, 마치 케냐에서 국경을 넘을 때의 트럭
안에서처럼, 눈도 뜰 수 없고 코와 입을 틀어막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니 기차는 1주일에 한번씩은 왕복으로 운행을 하면서도, 늘 10년은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뽀얗게 먼지를 안고 다니는 거였다.

달리기 시작한지 한시간만에, 나는 먼지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집트 까지는 빨래를 하지
않을 작정으로 가능한 한 깨끗하게 유지하려 했던 옷들도, 그냥 먼지 속에서 뒹굴게 내버려 뒀다.
빤지 얼마 안된 운동화도 이미 색이 바뀌었고, 흰 양말은 더이상 흰 양말이 아니게 되었다.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는거, 포기했다. 그냥 머리와 코와 입을 감싸도록 천만 한 장 감아놓고.
가방이며 바지며, 툭 건드리면 먼지가 피어오르는 지경이었지만, 그냥 참기로했다. 뭐 어떠냐.
먼지가 사람 무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늘 먼지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삶이겠지. 모래에서 뒹굴며, 바닥에서 자고, 모래 묻은 손으로, 먼지가 섞인 빵을 씹고, 뿌연
물을 마시고.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사람들, 할머니들, 우리 엄마 나이의 아줌마들, 어린 아이들. 그
사람들을 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니. 내가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준다고해서 쉽게 바뀌지도 않을,
그 사람들에겐 당연한 삶을 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니.

수단에서 이동을 하면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은 마을이다. 멀리서 보면 마을이 있는지도 구분이 안갈,
흙먼지와 똑같은 색으로 만들어진 집들이다. 흙으로 만든것 같은, 가끔은 뾰족한 지붕을 가진
것들도 있어, 그려 놓은 것 같은,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이 생긴 집들도 있다. 흙으로 만든 집은
이제껏 많이 봐 왔지만, 사막 가운데 길을 달려 가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나타나는 그림같은 마을이라
참 보기 좋다.

사람들도 그림 같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원피스 같은 흰 옷을 입고 그 위에 조끼를 입고 다니는
식이다. 여자들은 커다란 알록달록한 천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감싸는데, 여기는 참 신기하게
인도의 사리를 연상케 한다. 크기도 그렇고, 몸에 두르는 방법도 그렇고. 흙집들 속에서 당나귀와
함께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림이다.

그런데 수단에는 흰 사람들이 있다. 깜짝 놀랐다. 백인인 것 같은, 터키 사람 같은 사람들이
있는거다. 처음엔 외국인인줄 알았지. 하지만 피부색 말고는 현지인들이랑 완전 똑같은거야. 어라,
하고 있는데 날 보고는 welcome to sudan! 하길래 완전히 기억이 났다. 생각해보니 전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수단에는 흰 사람들이 있다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수단 사람인데,
백인처럼 흰 사람이 있다 하는 이야기를 들은게 기억이 나더라.

해질녘이 되었고, 기차는 제법 큰 역에 멈추어 섰다. 기도할 시간을 주는지, 한참이나 움직일 줄을
모른다. 많은 이슬람 국가를 다니면서, 길가에서, 혹은 벌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지만, 아직도 상점앞에서, 기차역에서, 공원에서 자리를 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신실한 사람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