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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아라비아에서 보낸 편지

두바이를 끝으로 아라비아반도를 떠나다

더운 낮동안엔 호텔 방에서 쉬어준 후 저녁에 미라니 포트로 갔다. 바닷가의 언덕 위에
만들어진 요새다. 구불구불한 바닷가를 걸어 요새로 올라가보니 수없이 많은 똑같은
다른 요새들과는 달리 내부를 공개하고 있었다.

걷느라 흘린 땀을 식히고 망루 안에 앉아 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좋더라.
바다 건너 산 뒤로 넘어가는 해가 항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무스캇은 참 평화로운 항구도시였다. 오만에서 보낸 5일간 가장 관광 다운 관광을 한 것
같은 날이었다.


그걸로 관광은 끝났다. 담날도 동네 산책 정도의 수준에서 끝났으니까. 빨래를 실컷
하고 텔레비전으로 알자지라의 뉴스를 보고 영화도 보고 그 담날을 위해 쉬어야 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타야하니 하루 전날 그 근처의 샤루자라는
곳으로 가서 1박을 하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냥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묵는 날 없이
무스캇에서 곧장 두바이로 가기로 결정한 거다. 이른 아침의 버스를 타야했고 또 밤
늦은 비행기를 타야했으므로 아주 피곤할 게 뻔하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은 늘 그렇듯 밤에 잠이 안온다. 다섯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그날 밤 나는 30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잠을 자 보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결국 못잔거다. 몸은 늘어졌지만 나는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서야
했다. 호텔이 있는 마트라지구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루위지구로 그리고 거기서
두바이행 버스를 쉽게 찾아서 탔다.


잘 포장된 사막 길을 버스는 잘 달렸다. 기사 아저씨가 날 보고 일본이냐고 하시길래
한국이랬더니. 이 버스 한국 차라고 최고라고 한다. 보니까 현대의 버스다. 탈 때부터
버스가 편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역시 한국 버스였던거다. 벤츠의 버스보다
의자가 낮아서 다리가 닿는다는 것 만으로도 내겐 편했다.


두바이에 도착했다. 당일치기로 두바이를 구경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려니 배낭이 말
그대로 짐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작다고 해도 여전히 내겐 무거운 짐이었다. 내가
모든걸 다 봐야한다는 혈기왕성한 여행자가 아니길 천만 다행이지.


두바이의 7성 호텔 부르주 알 아랍. 바다 위에 섬을 만들어서 지었다는 호텔이다. 내가
두바이에서 구경하기로 한 유일한 관광포인트였다. 사진으로는 계속 봐 왔었고
두바이에 가게 되면 저것 하나는 봐 둬야겠다 생각을 했었거든.


환전소를 찾고 버스정류장을 찾고 하느라 한시간 넘게 더운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 거리들을 걸어다니며 내가 만나고 길을 묻고 대화를 나눈 사람 중에 아랍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 혹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돈 많은 두바이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다닐 일이란 없는 거지. 그들은
고급 승용차의 까맣게 칠한 창 안에서 나 까지 포함한 서민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구경할
뿐이지.


물어물어 버스 정류장을 찾아 아주 쾌적한 버스를 타고 갔다. 한시간 넘게 타고
가야했지만 전혀 괴롭지 않았다. 어떤 관광포인트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기대보다
호텔은 별 것 아니었다. 물론 멋있긴 했지만 그렇게 먼 바다에 떠 있는게 아니라 작은
다리하나 건넌 섬에 떠 있는 거였고 나같은 일반인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멀리서 구경이나 하는거지. 투숙객이 아닌 경우에 입장료만 60달러라던가.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입장료보다 싸진 않겠지. 뭐 미친척 한번
커피라도 마셔줄 순 있겠지만 꼬질꼬질한 배낭을 메고 그런 호텔에 들어가긴 나도
싫었다. 정면에서 보려니 검문소에 뭐에 다 가려 잘 보이지 않아 바닷가에서 보자 싶어
옆의 공중비치로 갔다. 비치들도 거의 고급호텔들의 전용비치가 되어 있어 누구나 갈 수
있는 공중비치까지는 걸어서 한참이었다.


그닥 넓지도 않은 해변이었지만 사람들은 많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수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파도가 높은 만큼 서퍼들은 많았다. 높은 파도를 헤치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파도 위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신 나 보였다. 나처럼 파도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꿈이나 꿀 일이다. 나도 그렇게 파도 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있었으면.


해변에 앉아 서퍼들을 구경하며 한참이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넓은 도시이고 차도 많다보니 버스 한번 타면 기본 한시간씩은 이동을
해야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두바이에 머문 아홉시간동안 버스 안에 있었던 시간이
네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가장 쾌적한 시간이었다.

 

티켓 카운터가 열길 기다려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를 탔다. 처음 타보는 자지라 항공.
쿠웨이트의 저가항공이라 쿠웨이트를 경유했다. 이렇게 해서 난 쿠웨이트라는 나라를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기만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쿠웨이트는 아주
물가가 비싼 나라인 모양이었다. 저가항공이라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판매되는
기내식의 가격이나 공항에서의 식당들도 아주 비싸더군. 물론 소득 수준이 낮은 일반
서민들을 위한 식당은 쌀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두바이와 쿠웨이트는 맛만 보고 나는 익숙한 이스탄불로 갔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널 때 나는 생각했다. 역시 이스탄불만큼 예쁜
도시가 없구나. 난 정말 이스탄불을 터키를 좋아하는구나.

 

03/29/2009 03:57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