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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돼지고기


오후엔 이슬라마바드를 떠나
아프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페샤와르로 가야했지만
어제부터 그치지 않고 퍼붓는 비에, 천둥에 번개에 추위에..
하루 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비내리는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것입니다.
이 '아직도'는 아직도 비내린다는 말인지
아직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단 말인지..
나는 어째 이나이 먹어갖고도 이런 말장난이나 생각하고 있는지.

작년 11월 초, 파키스탄의 서북부
치트랄과 칼라시밸리를 여행하던 때
내 사진의 테마가 길, 길에서 만난 사람. 이었습니다.
따로 테마를 정하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닌데
실컷 찍고 씨디를 구우려고 보니,
온통 길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불구불 휘어지고 꺾어진 길가에 서 있는 앙상한 호두나무.
포장같은건 꿈도 못꾸는 시골의
비만 오면 질퍽거리고
때론 강위로 차가 달리기도 하는 길.

그런 길을 보면 떠나고 싶어집니다.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떠나 있는 것을, 또 어디로 떠난다는 것인지.
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
짐을 꾸리고, 배낭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때 찍은 사진 파일이 없어 못올리는게 아쉽네요.

한달반만에 다시 찾아가는 아프가니스탄.
흙빛 도시 카불로의 첫걸음을 내일 아침 내디디렵니다.


200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