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 아라비아에서 보낸 편지

기분잡친 타림 관광

시밤에 다녀온 다음날 어제는 하루종일 버스 찾으러 땡볕을 걸어다녔고 오늘은 혼자서
타림에 다녀왔다. 옛날부터 종교적 학술적으로 이 지역에서 중심이 되던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에 크고 작은 모스크가 엄청 많더군. 예멘에서 가장 높은 40미터짜리
미나렛을 가진 무흐다르 모스크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타림은 엄청 더웠다.


마침 점심의 휴식시간. 마을은 조용해지고 몇몇 아이들만 지치지 않고 놀고 있었다.
나도 지쳐 모스크의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가 아이들이 너무 귀찮게 굴어서 다시 일어나
거리로 들어갔다.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와서 인사하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래서 찍어서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 개새끼가 손짓으로 한번 할래 하는거다. 알러뷰 하면서. 쌍욕을 퍼부어주고
옆에 떨어져 있던 다 떨어진 슬리퍼를 주워서 집어던졌다. 오토바이 타고 도망가는 놈을
맞힐 수는 없었지만. 머리통을 박살내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 개새끼. 뜨거워
죽겠는데도 불구하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정색으로 뒤집어 쓰고 다니는데, 그것도
예멘에서 그런 새끼를 만나게 되다니. 그래서 혼자 다니는게 싫은거다.


텔레비전에서 맨날 보는 영화에서 외국여자들이 남자가 알러뷰 하면 좋아서 자고
하니까 외국여자를 쉽게 보는거야. 외국여자들은 다들 그렇게 알러뷰만 하면 좋아서
같이 자는 줄 아는 머리 나쁜 것들이 있다니까.


기분을 팍 잡쳐서 더 이상 관광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오는 아이들도 짜증나고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도 귀찮았다. 조금 더 걷다가는 이렇게 관광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접기로
했다. 언덕위에만 올라가 보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날은 덥고 짜증은 나고 올라가는 길도
모르겠고 해서 합승택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차만 두잔 거푸 마시고 돌아와 버렸다. 그
미친새끼 때문에 오늘의 관광을 완전 망쳐버린 거지.


정보좀 찾아보려고 인터넷 하러 갔더니 오늘따라 느려서 아무 것도 뜨질 않고 물은
며칠째 안나오고. 싼 게 비지떡이라고 싸다고 좋아했더니 되는게 없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인터넷 가게 주인은 오늘은 느렸으니까 라며 인터넷 요금을 깎아줬고 호텔
매니져는 물 안나와서 미안하다며 300리알을 준다. 역시 예멘 사람들은 양심적이야.
돈 몇푼에 금방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제는 콸콸 나오는 물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기분전환을 해버렸다.


이제 다시 예멘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간다. 오만. 그리고 두바이. 유럽을 방불케 하는
물가 때문에 벌써부터 겁이나긴 하지만 앞으로 5일. 5일만 버텨내면 나는 다시 내
집같은 터키에 있게 될 것이다.

 

02/26/2009 01:01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