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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스탄에서 보낸 편지

그루지아, 카즈베기로

터키다. 이제 미루지 않고 착실하게 편지 잘 써야지 했는데, 아르메니아를 떠나던 기차 이후로 또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 그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그루지아 구경하고, 밤버스에 시달리면서 터키로
국경을 넘어 트라브존에 갔다가, 다시 여기 카파도키아에 왔다.

터키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빨리 이스탄불 안오고 뭐하느냐고, 수십번 다닌 카파도키아는
왜 또 갔느냐는 반응들이지만, 나는 이스탄불에 가기 전에 한번 더 카파도키아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이스탄불로 직행해서 하루라도 더 빨리 친구들을 만나고, 이번 또다른 루트로의 아시아횡단을
끝내고 싶다는 기분도 없지 않지만, 그 전에 다시 한번 여행자로서 카파도키아를 즐기고 싶은
마음도 컸다.


예레반을 정시에 출발한 기차는, 왠일인지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몇시간은 편지를 쓰고, 또
몇시간은 둘이서 훌라를 하고, 책도 읽고, 별것 별것 다 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남아, 마지막엔 좀
지루했다. 오전 8시에서, 늦어도 10시 쯤엔 도착할 예정이던 기차가 드디어 트빌리시역에 도착한 건
오후 다섯시. 15시간이면 충분한 기차가 22시간만에 도착한 거였다.

예전에 묵었던 숙소에 짐을 풀고, 긴 이동에 지친 몸을 일단 쉬어줄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은
트빌리시 구시가로 갔다. 처음 왔을 땐, 사흘이나 있으면서도 한번도 가지 않고 바로 아르메니아로
갔었지만, 이번에는 거의 매일 갔다. 무슬림의 구시가와는 다르게 모스크대신 교회들이 많은
구시가였다.

같이 있는 카즈의 안내로 걸어서 꽤 긴 거리를 걷다보니, 심상찮은 그림들과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고 파는 노점상들도 많고, 잡동사니와 골동품들을 파는 상설 벼룩시장도 서 있었다. 그런
골동품들을 파는 벼룩시장을 지날 때마다, 앤틱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물건을 보는 눈이 있다면, 흔치 않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하고. 늘 그랬듯 이번에도 생각만 하고
끝나버렸지만.

아르메니아의 교회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루지아 정교의 교회들을 구경하고 터키나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 닮은 듯한 집들, 거리들을 구경하고, 언덕도 올랐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언덕 위에
올라 트빌리시라는 도시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사흘을 보낸 후, 우리는 카즈베기라는 곳으로 갔다.

얼마전 러시아와의 전쟁 원인이 된 지역, 남 오세티아라는 자치국의 경계선을 오른쪽으로 끼고
올라가는 그루지아 군용도로를 북쪽으로 타고, 러시아와의 국경 가까이까지 올라간 곳에 있는
마을이다. 이 군용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 경치가 아주 멋지다고, 전부터 듣고 있어서,
그루지아에서 다른 곳은 몰라도, 카즈베기는 가 두고 싶었거든. 하필 남오세티아 바로 옆을 지나는
거라,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전쟁도 끝나고, 별 문제없는 듯하더라고. 그래서 가기로 했다.

그루지아도 한국만큼이나 작은 나라라 이동하는 데에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강을 끼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멋졌다. 10월. 가을이 깊어가는 멋진 계곡을 보면서 생각한 건, 2주 정도만 더
있다 왔으면 훨씬 멋지겠는데, 하는 거였다. 하지만 2주 후였으면 훨씬 더 추웠겠지.

그리고 가장 북쪽의 마을 카즈베기.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보니 카즈베기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한바퀴 휘익 둘러보니, 저어기 산꼭대기에 자그마한 교회가 하나 서 있는게
보였다.

저렇게 힘든 데에다 교회를 만들어 놓았구나 싶어 친구에게, 저기 보라고, 저런데에 교회가 있네,
했더니 우리가 저 교회를 구경하러 가는거야, 한다. 그냥 올려다보기에도 목이 아프고, 까마득한
교회인데, 저기까지 어떻게 걸어서 올라가야 하나 싶었다.

 

11/18/2008 08:55 pm